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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스냅타임] [고양이정원]길에 버려진 잿빛 고양이, 하얀 천사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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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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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 고양이정원 대표 (사진=고양이정원)


평범했던 초가을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아이가 있다. 그날도 카페에서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손님을 받고, 청소하고 늘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모품이 떨어져 시장을 보러 잠시 나오게 되었다. 자릴 비운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카페에서 전화가 오고 매니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분이 고양이를 데리고 오셨어요! ”
고양이와 동반 입장이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사항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이 고양이와 함께 카페에 오셨나 잠시 생각했다.
잘 설명해 드리라고 말하려던 찰나, 카페 앞 골목에 버려진 걸로 추정되는 고양이를 데리고 오셨다고 하는 매니저의 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혹여나 누가 문 앞에 고양이를 유기하고 간 걸까.
상황 설명을 듣자 하니 골목을 지나가던 중, 카페 앞 소방서 근처 골목을 서성이던 고양이가 그분을 계속 따라왔다고 한다. 마침 우리 카페도 바로 앞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데리고 오셨다고 했다.
반면 더는 고양이를 추가로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걱정이 앞섰다. 매니저에게 우선 그 아이를 잠시 보살피고 있으라고 전달 후, 바로 카페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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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정원에 발을 들인 '솜이'의 첫 모습 (사진=고양이정원)


처음 본 아이의 상태는 얼굴만 멀쩡해 보일 뿐 본래 가진 털 색이 무색할 만큼 잿빛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길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군데군데 검게 그을린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길냥이라고 보기에는 터키쉬앙고라와 페르시안이 섞인 듯 보이는 아이였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 먹은 게 없는지 배는 한 줌에 잡히며 앙상하게 남은 뼈를 지저분한 털이 덮고 있었다. 물을 먹지 못해 탈수가 심한지 입안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오랜 기간을 울었는지 목이 쉬어 나름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울어보지만 가냘프게 갈라지는 소리만 날 뿐, 울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급한 대로 물과 습식사료를 주었고 허겁지겁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짠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 손을 잘 타고 미용 흔적도 있는 게 분명히 누군가가 키우던 고양이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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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정원에서 적응중인 '솜이'의 모습(사진=고양이정원)


정원을 운영하면서도 길에 있는 고양이를 섣불리 구조하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의 고양이 일 수도, 그래서 주인이 있거나 혹은 근처에서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고 있는 주인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미 길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잡아 잘 살아가는 고양이를 불쌍하다는 이유로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함부로 구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며 그 아이를 데려오신 분과 며칠 동안 카페 근처를 수소문하고 SNS로 주인을 찾아보고, 혹여나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찾고 있는 글을 쓰지는 않았을까 찾아보기도 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없었다.
이대로 이 아이를 여기서 키워도 되는 걸까.
마를 대로 마른 아이를 먼저 돌봐 주는 것이 급선무였고 목욕을 시켜주고 뭉친 털들을 제거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고 순순히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겁에 질려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한껏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만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다. 목욕 후에 드러난 새하얀 털이 솜뭉치 같아 이름을 ‘솜이’로 지어주었다. 그렇게 솜이의 정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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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정원에서의 솜이(사진=고양이정원)


정원에 처음 오는 고양이들이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닐 거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환경, 그리고 처음 보는 많은 고양이 무리. 예민한 성격의 고양이들은 그런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적응을 잘 못 하게 되면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기기도 하며, 잘못하면 급사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새 식구가 오게 되었을 때 집사로서도 많은 신경이 쓰이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우려와는 다르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솜이는 정원이 마침 자기 집이었던 냥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고 있으며 이제는 제법 살도 찌고 사냥도 하며 고양이다움을 뽐내고 있다. 나무에 올라타 낮잠 자는 것을 즐기며 사람이 찾아오면 주변을 빙빙 돌며 자기를 봐달라고 애교도 곧잘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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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쉬고 있는 '솜이'(사진=고양이정원)


솜이가 고양이정원에 와서 정말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솜이가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집사로서의 온 정성을 쏟을 뿐. 아직도 한편으론 솜이를 찾는 누군가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있는 이 동네에 외진 곳에 솜이가 길에 있었던 것은 우연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든다.
묘연이란 그렇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솜이. 이제는 편안한 모습의 솜이.길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솜이는 지금 이곳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솜이는 잊지 못할 것이다. 길에서 보낸 힘들었던 그 시간을.
글·사진=박서영 고양이정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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