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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부작사부작] 당신의 두 손을 얹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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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기를 끊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단식 29일째인 차광호 지회장이 눈물을 흘렸다. 422일째 75m짜리 굴뚝에 올라 농성중인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과 박준호가 무기한 단식 농성을 결정했다. 이날 오전 굴뚝 앞에 모인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단식 철회를 설득했지만 긴 시간 고민을 통해 결정했으니 존중해주길 바란다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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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번 음식과 생필품, 핫팩, 휴대용 충전배터리 등이 담긴 빨간 가방을 올려주던 밧줄은 어제 오후부터 굴뚝 난간에 짧게 묶인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굴뚝 위에는 물도, 소금도, 핫팩도 없다. 지난 크리스마스 두 사람의 몸상태를 확인하기위해 굴뚝에 올라갔던 의료진은 청진기를 대기 위해 본 두 사람의 몸은 뼈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건장한 노동자였던 두 사람은 50kg 밖에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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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에는 스타플렉스(파인텍)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함께 20여일 동안 단식 중인 송경동 시인, 나승구 신부 등도 함께 했다. 무기한 단식으로 28일째 곡기를 끊고 있는 차광호 지회장은 마이크를 잡자 눈물이 흘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욱씨가 다가와 가만히 두 손을 등에 올려주었다. 오랜 싸움을 끝낸 뒤 회사로 돌아간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차 지회장에게 위로와 힘을 건넸다. 두 사람은 말이 아닌 두 손의 온기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굴뚝에서 보내온 두 노동자의 외침을 전한다.



고공농성자 무기한단식 돌입에 임하며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고용.노동조합.단체협약 승계)노사합의 이행하라

노동악법 철폐하라

헬조선 악의 축을 해체하라

민주노조 사수하자

‘청춘을 다바쳤다. 민주노조사수하자!’

지난 2005년 말 한국합섬 자본은 부실경영, 경영권다툼, 경영진의 328억원의 공금횡령, 문어발식 투자확대 실패 등의 책임을 되레 노동자들에게 돌리면서 인적구조조정을 무차별 진행하였다.

노동조합이 즉각 부실 경영, 횡령 처벌 및 환수, 인적구조조정 저지 등으로 전면투쟁에 나서자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용역깡패와 구사대 200여명을 투입하는 등 본격적으로 민주노조 깨기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악착같이 용역깡패와 맞서 싸워 물리쳤고 해고와 손배가압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은 기업 긴급운영자금 200억원을 구조조정에 소진하면서 회사는 자금경색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폐업에 이르렀다. 이것이 5년간 폐업투쟁의 시작이다.

그 5년의 폐업투쟁 동안 칠흑같이 캄캄한 것은 단지 불꺼진 공장만은 아니었다. 조합원들은 생계의 위협속에 맥없이 떠났다. 그나마 버텨온 동지들도 가정이 해체될 위기 속에 눈물로 떠나야 했다. 850여 조합원은 마지막 재가동 합의시점 104명만 남았다.

‘파산기업 공기업화’를 외치며 대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고 투기자본의 공장인수를 저지하며 끈질기게 폐업투쟁하던 우리에게 지역내 연대조차 궁핍했다. 그 만큼 절망적이라는 것의 반영이었다. 그 절망 앞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은 단 하나였다.

1996년 2명의 산재사망사고 진상규명을 놓고 노자간에 전면전이 있었다. 유령노조를 깨트리고 민주노조가 들어서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자본의 탄압이 전면화 된 것이다. 이때 노동조합은 38일간의 옥쇄파업을 전개하면서 2명의 분신, 40여명의 구속이라는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단 하나가 바로 민주노조였다.

2010년 7월 노동조합과 3승계 우선 합의조건을 수용한 스타플렉스에 의해 공장은 2011년 4월 다시금 재가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과 2년도 채 안된 2013년 1월, 자본에 의해 일방적 공장가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지회 어용집행부에 의해 조합원의 생명줄과도 같은 고용이 청산되어지고 자본을 상대로 투쟁다운 투쟁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고립 속에 파묻혔다. 외부의 눈에 폐업, 노노갈등으로만 취부되면서 그야말로 그렇게 끝내어지는가 했다. 그래서 2014년 5월 27일,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절박하게 굴뚝에 올랐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굴뚝에서 목숨걸고 버틴 408일은 청춘을 다바쳐 지켜온 민주노조를 그렇게 끝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 가능케 했다. 그 절박함이 실리가 판치고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연대의 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대의 힘이 굴뚝의 봄을 만들었다.

2015년 7월 또 한번의 3승계 합의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국합섬에서 스타케미칼로, 스타케미칼에서 다시 파인텍으로..

하지만 두번째 3승계 합의서 또한 자본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였다. 파인텍으로 전환한 공장에서 강민표가 바지사장으로 있으면서 3승계 합의 사항을 전면 부정하고 노동자 털어내기를 노골화하였다. 노동조합 파괴공작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또 한번의 살인적인 굴뚝농성투쟁을 불러왔다. 지금도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두번의 합의서를 전면 부정하는 행태를 취하고 있다. 핵심은 노동조합 민주노조의 역사인 단체협약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노.사 관계를 단절하고 동시에 끊을려고 하는 의도인 것이다.

우리는 지난 25여년간의 세월속에 많은 투쟁을 넘어왔다. 그 투쟁 속에는 적지않은 시행착오와 좌절, 위선과 절망 앞에서 언제나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어줄 수 없고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청춘과 함께해온 민주노조이다. ‘청춘을 다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는 그냥 구호만이 아니다. 그래서 또 다시 굴뚝농성이었고, 그 굴뚝농성은 또 한 번의 408일을 훌쩍 넘어 421일이 되었다.

청춘과 함께해온 민주노조가 훼손되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단 한 시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다른 제안도 쉽사리 용납할 수 없었다. 비록 패배할지언정 천박한 악질자본으로부터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 싸워왔다.

우리가 지키고자 한 그 민주노조만이 자본에 의해 제멋대로 주물러지는 노동악법의 사슬도, 헬조선의 굴레도 벗어버리고 끊어낼 수 있는 또하나의 길이요 희망이다.

금일부로 고공농성자는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다. 차광호·김옥배·박준호·조정기·홍기탁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모든 동지들의 연대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사수해 나갈 것이다.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땅아래 동지들. 전국에서 함께해주는 동지들의 힘으로 민주노조의 깃발을 움켜쥐고 당당히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것이다.

단결

2019년 01월 06일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굴뚝 고공농성자 박준호 홍기탁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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