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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5년째 식대 2700원 대학 청소노동자…뭘 먹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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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5일 정오 고려대학교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이 총장실을 향해 식대 인상을 위한 손팻말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고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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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에서 정한 출근 시간보다 1시간 반 이른 새벽 4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 제시간에 출근해선 전날 청소노동자들이 퇴근한 오후 4시부터 쌓인 쓰레기를 학생들 등교 전까지 다 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해진 근무시간을 넘겨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최소 두 끼를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한 달 식대는 12만원, 한끼 2700원꼴로 5년째 동결됐다. 고려대 교직원식당은 한 끼에 6500원, 학생식당은 5천∼6천원, 고려대 앞 분식집의 야채 김밥은 한줄에 4천원이다. 학교 식당이 아닌 휴게실에 모여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밥과 김치로 하루 두 끼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청소노동자 밥 한 끼의 권리,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지난 25일 점심 고려대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이 대학 본관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친 이유다. 손에는 ‘새벽부터 일하고 한 끼 2700원, 생활임금 보장하라!’, ‘물가는 폭등 식대는 동결 원청 대학이 해결하라!’ 등이 써진 팻말을 들었다. 같은 식대를 받는 연세대·홍익대·서강대 등 서울 13개 대학의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도 ‘한 달 식대 2만원 인상(12만원→14만원)’을 요구하며 한 달째 대학 총장실을 향해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중간고사 기간에는 스피커 소리를 줄이고 ‘청소노동자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밤양갱을 나눠주기도 한다.





한겨레

홍익대학교 경비노동자들의 점심 도시락.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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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사립대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은 ‘동일노동 동일식대’에 바탕해 한달 식대 14만원을 요구한다. 대학과 노동자 간 직접고용이 이루어진 국·공립대학노동자들은 2024년 기획재정부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14만원의 식대가 책정됐다. 국·공립대 노동자나 사립대 노동자나 같은 일을 하는 만큼 같은 식대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서재순 전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 분회장은 “용역업체는 식대를 올려줄 수 없다고 해서 원청인 학교에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직접적인 교섭 대상은 서울 13개 사립대학의 16개 용역업체로 구성된 사용자 집단인데, 사용자 쪽 관계자는 한겨레에 “올해 노동자들 시급을 270원 인상하기로 했고 이는 최저임금 인상액인 240원보다 이미 높은 상황이라 식대까지 인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년에는 식대 인상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고려대학교 쪽은 “내부 검토 중이며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밥 한끼의 권리’를 위한 학교 청소·경비·주차 노동자의 요구는 학생들도 지지하는 분위기다.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아무리 못해도 식대가 5000원은 넘어야 하는 거 아닌가. 2700원으로는 편의점에서도 해결이 안 된다’, ‘노동대학원까지 있는 학교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정당한 권리 꼭 얻어내셨으면 좋겠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고려대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나해빈(22)씨는 “물가 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식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구성원들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유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 분회장은 “수업 시간 전후로 강의실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계단과 창문까지 닦고 나면 속옷까지 젖는다. 이런 상황에 밥 한 끼라도 제대로 먹고 싶어 시위에 나섰다”며 “원청인 학교가 하루빨리 면담 요청에 응했으면 한다”고 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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