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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방송국은 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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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구성, 새 코너.

꼭 운율을 맞추려는 건 아니지만 나의 2019년 시작은 이렇게 요약된다. 필자가 담당하는 TV조선 '사건파일 24'가 새 코너를 선보인 것이다. 그동안 주로 국내 사건을 다뤘다면, 새해를 맞아 세계를 놀라게 한 기록적인 사건 사고를 다뤄볼 참이다. 이렇게 새 코너를 기획할 땐 구성, 패널 섭외, 세트 디자인 등 준비할 것이 많지만 그중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바로 제목, 즉 이름 짓기다.

코너 제목을 고민하는 제작진의 자세는 첫아이 이름을 짓는 부모나 다름없다. 제목 하나로 그 안에 담고 싶은 기획 의도가 함축돼야 하고, 발음도 쉽고, 들어서 정감 가고,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름이어야 한다.

그 때문에 이름을 짓는 제작진의 회의는 언제나 치열하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집단으로 소리 내 발음해 보고, 혹시 한 명이라도 거부 의사를 보이면 바로 탈락시켜 가며 토너먼트를 벌인다. 그 진지함이 국가대표 선발전 못지않다. 간혹 농담을 주고받다가 번뜩이는 제목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제목을 짓는 시기엔 제작진은 싱거운 농담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말고 꼼꼼히 메모해야 한다.

제목에도 유행이 있다. 한때는 '~입니다' '~합니다' 등 서술형 제목이 유행했다가, 이후엔 영어 제목, 얼마 전엔 줄임말이 유행처럼 쓰였다. 요즘은 신조어가 대세인데, 얼마 전 제목 회의에선 어린 제작진이 '귀염뽀짝'(귀여움을 극대화해 표현하는 것), '핵인싸'(어떤 무리의 중심을 이루는 사람), '아싸'(핵인싸의 반대어) 등 최신 신조어를 쏟아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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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사 보도에선 쓰지 않는 말이기에 채택하지 않았지만, 이런 신조어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걸 보면 곧 제목으로도 등극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신조어는 유행을 선도하는 감각적인 면은 돋보이지만 그만큼 생명이 짧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코너의 수명이 몇 개월이 될지, 수십 년이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평생 불릴 아기의 이름을 복되고 오래갈 이름으로 짓는 것처럼, 제작진도 새로운 코너의 장수를 빌며 오늘도 작명에 고민을 한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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