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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평양 오디세이] “대미협상 내가 맡게 해달라” 北김영철, 미국에 비밀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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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협상 내가 계속 맡게 해달라”

김영철 부위원장 미국에 비밀청탁

지난해 말 황병서 몰락시킨 최용해

이번엔 김영철 통전부와 권력 암투

북·미 접촉 무산 뒤 존재감 없어

대남·대미 꼬일 땐 희생양 될수도

뒤숭숭한 북한 권력 핵심부

중앙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7주기 참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 들어서고 있다. 김 위원장의 왼쪽은 최용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 오른쪽은 이수용 당 부위원장 겸 외교담당 국무위원. 오른쪽 끝에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중앙TV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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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의 권력 내부가 심상치 않은 기류다. 올해 최고의 ‘파워맨’으로 떠오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향한 견제의 칼 끝이 권력암투 양상으로까지 증폭된 모양새다.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최고지도자 간 만남 때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곁을 지근거리에서 지킨 인물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에서 두번째로 힘이 센 사람’으로 불린 김영철. 그를 제어하고 나선 건 최용해 당 조직지도부장이다. 연말 평양에 불어닥친 권력 암투의 전말과 전망을 짚어본다.

서울과 워싱턴 외교가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관련한 은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지난달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의 북·미 고위급 회담이 무산되면서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이 전한 내밀한 스토리의 핵심은 김영철 부위원장이 미국 측에 자신의 신상과 관련해 ‘청탁’을 했다는 얘기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은 “김영철이 협상파트너인 미국측 인사에게 ‘미국 문제도 내가 관장할 수 있게 해달라’는 로비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귀띔했다. 대남 문제를 주로 담당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겸하는 김영철이 북·미 간 협상도 자신이 계속 담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는 얘기다. 소식통은 “김영철이 접촉한 미국 측 인사는 한국계인 앤드류 김(미국 중앙정보국 코리아미션센터장)이란 관측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철은 올 초부터 시작된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유화 공세의 선두에 선 인물이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 문제를 제기하자 통일전선부를 총동원해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2월 말 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천안함 폭침 도발의 주범’이란 비판 여론 속에서도 남한 방문을 강행했다.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그는 김정은의 곁을 지키며 최측근 인물로 자리를 굳혔다.

김영철이 ‘파워맨’으로 한 단계 더 뛰어오른 건 6월 초 백악관 방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 간 김영철에게 미국은 캐딜락 승용차에 특급 경호를 제공하는 등 최고의 의전으로 예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친서를 받아들고 큰 만족감을 표했다. 면담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김영철을 차량 앞까지 나와 배웅했다. 같은 달 중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김영철의 존재감은 최고에 달했다.

소식통은 “폼페이오 방북과 싱가포르 회담을 거치며 김영철이 ‘대미 문제까지 관장하는 게 김정은 권력에서 보다 안정적 입지를 다지는 길’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미 청탁’이란 무리수를 둔 것도 이 때문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런 정황이 입소문을 타면서 결국 평양의 정보 당국에까지 포착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노동당의 조직과 간부 인사·비리 문제를 관장하는 최용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이 칼을 꺼내 들었다고 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온 인사는 “김영철과 통일전선부의 대남·대미 접촉과정과 문제점에 대한 검열을 조직지도부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빨치산 혈통으로 북한 권력에 지분이 있는 ‘2인자’ 최용해(부친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소지가 있는 김영철을 견제,또는 제거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고 한다.

최용해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일 년 전 벌어진 ‘황병서 숙청’의 재연(再演)이란 지적도 나온다. 2017년 10월 노동당 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최고 요직인 조직지도부장을 거머 쥔 최용해 부위원장은 군부 핵심인 총정치국을 검열해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전 국가보위상을 몰락시켰다. 총정치국 간부들이 전횡을 일삼고, ‘당적 통제’(노동당의 지도)를 무시하거나 허위보고 했다는 비리사실을 김정은에게 직보해 하루아침에 철직(해임)시키거나 협동농장으로 ‘혁명화’를 보내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 초기인 2012년 4월 총정치국장에 임명돼 2인자로 우뚝선 최용해의 직위를 2014년 앗아간 황병서에게 보복을 가한 구도란 말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최용해의 조직지도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내세워 김영철을 비롯한 정적을 제거하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지난 10일자 노동신문은 “부정부패는 이적행위”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높은 비리척결을 예고했다. 신문은 “일꾼(간부를 지칭)들 속에 이기주의와 공명심, 안일해이된 사상관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영철을 표적검열한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려 다른 비리 사례를 무더기로 적발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황병서 숙청 때도 김정은 관련 지면을 부실하게 꾸몄다는 이유로 노동신문 간부를 숙청하고, 평양 고사포 부대 정치부장을 부패혐의로 처형한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밝혔다.

김영철은 11월 초 북·미 고위급 회담 무산 이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해 왔다. 군부 출신인데다 강경파인 김영철을 미국 측이 대미접촉 라인에서 제외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달 초 ‘김영철이 앤드루 김과 판문점에서 만났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국가정보원은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 정보 당국은 “아직 김영철 부위원장의 신상과 관련한 특이점이 구체적으로 파악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6일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김정일 사망 7주기’ 참배 때 왼편 앞쪽에 김영철이 자리한 모습이 조선중앙TV에 드러났다. 이날 행사에서 김정은의 오른쪽은 최용해, 왼쪽은 이수용 당 부위원장 겸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각각 자리했다. 이수용은 김정은이 스위스 조기유학 시절 현지 대사(당시 이름은 이철)로 후견인 역할을 맡았다. 정부 당국자는 “조직·인사 등 내치(內治)는 최용해, 외교는 이수용에게 나눠 맡기겠다는 김정은의 의중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라고 풀이했다.

관건은 김정은 위원장이 앞으로의 정세변화를 지켜보면서 김영철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다. 국정원 대북정책실장을 지낸 김정봉 유원대 석좌교수는 “남북관계의 소강상태가 장기화 하거나 북·미 관계가 꼬일 경우 김영철의 책임문제가 본격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흐름에 따라 북한 당국이 대남·대미 전략을 담당한 핵심인사를 ‘희생양’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최근들어 한국과 미국에 대한 비난선전을 재개하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연말 결산에 해당하는 ‘총화’를 마무리한 뒤 2019년 대내외 전략을 담을 김정은 신년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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