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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사건 보도 PD는 취재기자에게 SOS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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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랜선'이란 단어가 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랜(LAN)선'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에 '랜선 친구' '랜선 이모' 같은 다른 단어를 붙여 SNS로 맺어진 인간관계를 뜻할 때 쓴다. 주로 SNS로 소통하는 요즘 세태에 딱 떨어지는 신조어다. 필자에게도 '랜선 은인(恩人)'이 있다. 바로 현장을 발로 누비는 취재기자들이다.

필자가 담당하는 '사건파일 24'의 경우 오전에 아이템을 선정했더라도 오후에 시청자의 관심이 쏠리는 이슈가 있으면 탄력적으로 아이템을 바꾼다. 길게는 1~2시간, 짧게는 단 몇 십분밖에 방송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 가장 애를 먹는 것이 '취재'다. 사건 보도의 특성상 반드시 팩트 확인을 해야 하는데 수사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거나, '누군인 줄 알고 내용을 말해주느냐'며 취재를 거부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지만 당장 경찰서로 달려갈 수 없는 제작진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이럴 때 '랜선'으로 SOS를 치는 상대가 취재기자들이다. 취재기자들은 경찰이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가지고 있고, 거기엔 대략의 사건 내용과 수사 담당자의 직통번호가 친절하게 적혀 있다. 몇 단계를 거쳐야 알 수 있는 내용이 단 한 번에 입수되는 것이다. 또 '누군지 몰라서' 알려주지 않던 내용도 취재기자에겐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알려주기 때문에 팩트 확인에 큰 도움을 얻는다. 제작진에겐 산타보다 더 고마운 취재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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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연장선일 뿐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재기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은 책상에 앉아 전화를 돌리는 게 아니라 '현장'에 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달려가는 중일 수도 있고, 더 중요한 사건의 브리핑을 받아 적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SNS로 "도와줘"라고 다급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직접 소속된 프로그램이 아니니 바쁘다 거절해도 할 말이 없는데, 고맙게도 그들은 반드시 답을 준다.

바쁘고 피곤한 연말이 그래도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고마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도 쑥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연말을 맞아 '랜선 은인'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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