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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취재일기] 심석희의 호소, 스포츠계 폭력의 조종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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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소영 스포츠팀 기자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1·한국체대)는 17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37) 전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3주 앞둔 지난 1월 조 전 코치한테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심석희는 조 전 코치의 폭행이 “14년간 이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 조 전 코치에게 발탁됐다. 그 이후로 14년 동안 폭행에 시달렸다. 주먹과 발로 맞은 건 보통, 아이스하키 스틱으로도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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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조재범 전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서 폭행 피해 사실을 진술한 심석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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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는 왜 지금껏 침묵했을까. 제자가 성적을 내자 조 전 코치도 덩달아 대표팀 코치가 됐다. 심석희가 금(계주)·은(1500m)·동(1000m) 메달을 딴 2014 소치 겨울올림픽도 함께 했다. 빙상계를 비롯한 스포츠계 전반엔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다. 코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다. 올림픽 ‘금밭’인 쇼트트랙은 더 심했다.

‘금메달만 따면 된다’는 성적지상주의가 모든 가치의 위에 존재했다. 성적을 위해서라면 때리는 코치도, 맞는 선수도, 지켜본 이도 눈을 감았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빙상연맹도 이런 ‘침묵의 카르텔’에 가담했다. 지난 2004년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 라커룸에서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나온 ‘좋은 성적’이 모든 상황을 덮었다. 빙상연맹은 내부적으로 무마하고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체육계에서 지도자의 폭력은 고질병이다. 심지어 부모 앞에서도 선수 머리를 때리거나 발길질을 한다. 자식이 맞는 걸 보면서도 대부분의 부모가 대꾸도 하지 못한다. 항의라도 했다가 지도자의 눈 밖에 나면 자식의 장래를 망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폭력은 선수의 몸에, 폭력에 대한 침묵은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심리적 압박감이 얼마나 심했던지 심석희는 의견 진술을 하다 울먹이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심석희는 물론 그의 부모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조 전 코치는 “심석희가 날 원망하고 미워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심석희 눈앞에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반성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조 전 코치는 9월 1심 당시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검찰은 형량이 죄질에 비해 적다며 항소했다. 심석희 역시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서 체육계 폭행이 사라지길 원한다”고 읍소했다. 심석희가 용기를 내 울린 경종이, 부디 체육계 폭력의 조종(弔鐘)이 되길 바란다.

박소영 스포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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