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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 (수)

[분수대] 오징어 실종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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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주 논설위원


이번엔 오징어가 난리다.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소매가가 마리당 8000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이맘때보다 40% 올랐고, 3년 전에 비해서는 160% 치솟았다. 무게로 따지면 ㎏당 2만원이다. 수입 냉동 돼지 삼겹살의 두 배다. 오죽하면 동네 중국집 짬뽕에서 오징어 보기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값이 뛴 이유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획량이 확 줄었다. 오징어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 해 20만t 넘게 잡혔다. 그 뒤 점점 줄어 지난해 8만7000t까지 감소했다. 올해는 5만t을 밑돌 전망이다.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오징어 서식지가 북쪽으로 이동했고, 그 북쪽 바다에서 중국이 오징어를 싹쓸이하고 있다. 한반도 인근에서는 씨가 말랐다. 이대로 가면 ‘국민 생선’ 명태와 말쥐치(쥐포의 원료)가 연근해에서 자취를 감췄듯 오징어 역시 사라질 판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올해 오징어를 ‘자원회복 대상 어종’으로 지정한 배경이다.

중국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바다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고 있다. 공해에서 잡히는 오징어의 70%를 중국이 가져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표면적 이유는 식생활 변화에 따른 먹거리 확보다.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진짜 이유는 ‘해양 정복(conquer the world’s ocean)’이다.

SCMP와 해양과학계의 시각은 이렇다. 오징어는 한해살이다. 오랜 기간 추적할 수 없어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바닷물의 흐름과 온도·염분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해 분석해야 드넓은 대양 어디에 오징어 떼가 있을지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오징어잡이는 중국의 해양 과학 발전을 가늠하는 테스트 베드다. 예측한 바로 그곳에 오징어 떼가 있다면 그건 중국이 해양 환경 변화를 족집게처럼 집어낸다는 방증이다. 이는 기후 패권과 연결된다. 바닷물의 온도·흐름 같은 해양 환경이야말로 날씨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갈 우주선을 쏘아 올린 중국은 이처럼 해양 과학 패권도 노리고 있다. 반면 우리는 무얼 하고 있을까. 세계 최고 학술지 네이처로부터 “한국에서는 정부가 바뀌면 연구기관장들을 강제로 중도 사임시키는 일이 일반적”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연구비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내 외국인 석학들이 청와대에 항의하기까지 했다. 문득 마른오징어 다리라도 질겅질겅 씹고 싶어진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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