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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버려져 사라질 뻔한 우리…‘자격증 있는 개’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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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안락사 공고 며칠 앞두고 운명적으로 구조돼

3개월 맹훈련 끝에 ‘테라피독’으로 거듭나…

인간에게 버려졌지만 인간을 구하는 개가 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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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낮 12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반려동물문화교실에서 개들을 만났다. 미슈(2), 요미(1), 치로(5), 우주(1), 콩콩이(1). 우리는 지난 7월 빛처럼 찾아든 어떤 날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할 뻔 했다.

지난 여름, 미슈를 제외한 네 마리는 버려졌거나 길을 잃었거나 학대 당한 채 경기도 양주시 유기동물보호소에 입소했다. 모두 서울시 동물보호관리시스템 유기동물 공고란에 올랐으나 입양은 요원했다. 한달에 1천 마리도 넘게 보호소로 들어오는 다른 동물들에 밀려 공고 글은 금세 밀려났다. 미슈는 유기견 출신으로 반려동물문화교실을 임시보호처 삼아 지내고 있었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개들이었다. 하지만 안락사 공고를 며칠 앞둔 지난 7월20일, 이들은 운명적으로 새 ‘견생’을 얻었다. 사람에게 버려진 개들은 ‘테라피독’ 후보견이 되어 사람을 구하는 훈련을 받게 됐다.

테라피독이란 질병이나 부상 또는 정신적 상처를 받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아픈 사람이 몸과 마음의 본래 기능에 접근할 수 있게 돕는 개들을 말한다. 흔히 ‘동물매개치료’의 매개자가 되는 개들을 일컫는다. 지난 여름, 국제구호단체 피스윈즈코리아, 반려동물문화교실, 서울시, 러쉬코리아, 한국에자이 등 각기 다른 기능이 있는 공공·민간 기관이 힘을 합쳐 ‘사회혁신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김동훈 피스윈즈코리아 대표와 권혁필 반려동물문화교실 대표는 7월20일 양주 유기동물보호소에서 테라피독 후보가 될 네 마리를 데려왔다. 아무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개들은 낯선 소리가 나면 짖고, 아무데나 배변을 하고, 산책을 나가면 위축됐다. 특히 치로는 학대의 경험이 있는지 체격이 큰 중년 남성만 보면 유독 으르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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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은 반려동물문화교실에서 지내며 3개월간 맹훈련을 했다. 테라피독은 모든 것에 거부감이 없도록 훈련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의 사람과도 잘 지내야 한다. 훈련사들은 휠체어를 타고, 헬멧을 쓰고, 철가방을 들고, 목발을 짚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개들에게 친화 교육을 시켰다.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놀라서 물거나 짖지 않도록 둔감화 교육도 진행한다. 이를테면 어린이들과 교감하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만지다 꼬집거나 꼬리를 잡아당겨도 참을 줄 아는 ‘성격 좋은’ 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테라피독으로 훈련하고 활동하는 과정이 개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종의 학대가 아니냐고 묻는다. 이에 김동훈 대표는 “활동 후 산책을 나가거나 좋아하는 놀이를 하는 등 보상을 충분히 한다. 개에게도 성향이 있어서 테라피독으로 활동하는 개들은 사람과 교감하는 시간을 즐거워한다”고 설명했다. 사람에게도 일에 대한 궁합이 있듯, 개들도 이 일과 잘 맞지 않으면 테라피독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3개월간 똑같은 훈련을 받았지만 5마리 개 중에는 미슈, 요미, 치로만 한국애견협회의 시험을 통과해‘동물매개도우미견 인증서’를 받았다. 기본 성격이 내성적이고 경계가 심한 우주와 콩콩이는 테라피독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미슈, 요미, 치로는 권 대표의 반려견인 켈리, 토리와 함께 동물매개치료 활동에 나섰다. 3개월 훈련한 초보 테라피독이다 보니 처음에는 옆에 앉아 켈리와 토리가 하는 걸 참관만 했다. 이후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사람들과 함께 서울숲에 소풍을 가고, 치매 환자 요양원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남양주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와 연대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삶을 사는 미등록 이주자 자녀들도 만났다. 권 대표는 “(세 마리의 수준이) 내가 생각하는 테라피독 기준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테라피독이 다녀온 모든 곳에서 다시 와 주길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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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유기견 살처분 제로 프로젝트’와 잇는다. 일본에 본부를 두고 있는 피스윈즈는 일본 내에서 유기견 살처분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인 히로시마에서 2010년 유기견 제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3년 만에 살처분 없는 도시에 이르렀다. 도시의 모든 유기견을 거둬들이고 이들을 훈련해 재입양시키거나 구조견으로 훈련시켜 세상에 다시 내보내는 프로젝트였다. 김 대표는 “대대적인 자본이 투입된 이같은 방식을 한국에서 당장 적용하긴 어렵지만, 버려진 개들이 사람을 구하는 구조를 만들어 가다 보면 파열음을 낼테고, 그 힘으로 정책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들에게 새 가족도 생길 예정이다. 미슈와 요미는 입양처가 정해졌고, 치로와 우주에게도 입양 요청이 들어왔다. 세상의 잉여로 취급됐던 개들은, 테라피독으로 거듭나 곁에 앉아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됐다. 김 대표는 “유기견의 안 좋은 모습을 자극적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지금의 방식을 벗어나고 싶다”고도 말했다. 요미, 미슈, 치로를 기점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잔잔한 파동이 시작되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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