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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학교의 안과 밖]대학 합격자 발표 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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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2019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최초합격자 발표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12년이나 되는 초·중·고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는 대학 합격자 발표 날은 수십만명이나 되는 청소년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니 예나 지금이나 그 긴장감과 설렘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 대입 합격자 발표 날의 분위기는 과거 부모들이 경험하던 때와는 아주 많이 다르다.

경향신문

부모세대 때에는 대학 합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추억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처럼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황량한 대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벽에 붙은 수천명의 이름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야 했다. 그때의 긴장감은 요즘처럼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확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당시 발표 현장의 모습을 찍은 언론 보도의 사진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만세를 부르거나 축하의 헹가래를 치는 모습들이 흔했다.

그러나 요즘은 모바일로 모든 것을 확인한다. 합격 여부 확인은 물론이고 대학별 응시원서를 작성하는 것도 인터넷으로 학생 본인이 직접 한다. 이렇다보니 학교 선생님과 상담한 후 학교 밖 사교육 업체에서도 상담을 받아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원서를 내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필수 제출서류에 추천서가 있어야 하는 대학교나 전형들에서는 누가 어떤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했는지 학교 선생님들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추천서를 요구하는 곳은 상위권 몇몇 대학들뿐이고 이조차 점점 축소되는 추세다. 심지어 원서 한두 장을 부모들도 모르게 지원했다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영원히 비밀로 한 학생도 보았다. 이것은 과거 담임 선생님이 일일이 펜으로 원서를 작성하고, 학교장 직인까지 찍은 것을 학생들이 직접 원서 접수장에 줄서서 제출하던 부모세대의 입시풍경과 정말 많이 다르다.

다른 것은 이런 과정만이 아니다. 요즘 고3들의 교실에서는 합격한 학생들의 환호나 박수가 사라졌고 낙방한 학생들의 탄식과 눈물도 보기 어렵다. 거의 한 달여에 걸쳐서 수시로 발표되는 여러 대학의 합격자 발표 때마다 합격생들은 합격의 환호가 불합격한 친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조용히 있게 되고, 불합격한 학생들은 굳이 결과를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어서 일상의 교실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학생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작은 사회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서 기쁨과 아쉬움도 속으로 삼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게다가 집에서조차 감정표현을 크게 하지 않던 학생들이, 공부하던 학원이나 과외선생님과는 기쁨을 만끽하거나 아쉬움과 불만을 크게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경쟁에서의 승리가 목적인 곳에서는 경쟁의 결과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을 즐겨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부모세대들에게는 이런 자녀세대의 모습이 낯설어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 20년이 넘는 세대 간의 간격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에는 청소년들이 너무 이상하고 위태로운 선택을 하거나 별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인기 있는 여러 전공이나 직업들도 30년 전에는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다시 생각해보면 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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