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안후이성 당서기로 부임한 완리(萬里)가 농가를 찾았다. 노인과 나이가 찬 딸 두 명이 있었지만 당서기가 방문했는데도 앉아만 있었다. 알고 보니 모두 바지가 없어 함께 얇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있느라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엔 젊은 부부가 두 아이를 키운다는 농가를 방문했다. 아이들이 안 보여 어디 갔느냐고 묻자 마지못해 큰 솥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솥 안에는 벌거벗은 여자아이 두 명이 수줍게 웃으며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추위를 피하도록 밥을 짓고 난 뒤 온기가 남은 솥에 앉혀둔 것이다. 완리는 두 집을 나온 뒤 눈물로 탄식했다(조영남 <개혁과 개방-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참혹한 농촌현실을 목도한 완리는 ‘생산대의 자주권을 보장하고, 일한 만큼 분배토록 하는’ 내용의 농촌개혁에 착수했다. 펑양현 샤오강(小岡)촌은 한발 더 나아가 호별영농제를 비밀리에 결의한다. 자본주의자로 몰릴 위험천만한 결정이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안후이성의 간부들은 묵인했다. 호별영농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 이듬해 샤오강촌의 식량 생산량은 전년 대비 5배에 달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도 2012년 ‘포전담당제’를 도입했다. 협동농장의 말단 단위인 분조의 인원 수를 3~5명으로 줄이고, 초과 생산물은 자율 처분하도록 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이런 조치의 효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구축된 뒤 개혁·개방에 성공한 중국의 길을 북한도 본격적으로 밟아가기를 기대한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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