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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인터뷰] 암브로시오스 정교회 대주교 "이주민을 예수처럼 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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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20년·착좌 10돌 맞아…"한국인에게 진리 전하는 게 내 소명"

"정교회는 초대 교회 전통 지켜와"…"분열이 죄라는 사실 깨달아야"

연합뉴스

암브로시오스 한국정교회 대주교가 꽃봉오리 십자가와 화려한 이콘으로 장식된 성니콜라스 대성당의 지성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정교회(正敎會·Orthodox Church)는 천주교(Catholic), 개신교(Protestantism)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기독교(그리스도교)의 한 갈래다. 동방(비잔틴)교회로도 불리며 로마를 근거지로 한 서방(라틴)교회와 교리 논쟁과 정통성 시비를 벌이다가 1054년 완전히 갈라섰다. 그리스와 러시아, 동유럽을 중심으로 교세를 유지해왔고 한국에는 1900년에 전래됐다.

크리스마스를 맞을 준비에 한창 바쁜 14일 오후 정교회 한국대교구청이 있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성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조그라포스(58) 대주교를 만났다. 산타클로스를 연상케 하는 긴 수염에 형형한 눈빛이 성자(聖者)의 풍모를 느끼게 했다.

1960년 그리스 에기나 섬에서 태어난 그는 1983년 아네테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됐으며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프린스턴대 대학원을 거쳐 아네테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터키 니케아·피레아 대교구청, 이집트 성카테리나 수도원, 미국 뉴잉글랜드·뉴저지교구에서 봉직했고 그리스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

2018년은 한국정교회에 매우 뜻깊은 해다. 최초의 교회 건물인 성니콜라스 대성당이 축성 50돌을 맞은 데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한국에서 사목(司牧)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 대주교에 착좌한 지 10년이 됐다.

그는 "정교회는 예수와 사도(使徒)들이 세운 교회의 전통을 2천 년 동안 지키며 바울로(개신교의 바울, 천주교의 바오로)가 그리스어로 쓴 신약성경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수께서는 우리를 원죄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화려한 불빛과 요란한 장식으로만 성탄을 기리려고 한다"면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그리스어로 질문에 답했고 대주교 비서인 박인곤 보제가 통역을 맡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연합뉴스

암브로시오스 한국정교회 대주교가 14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성니콜라스 대성당 앞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정교회 사제들을 보면 멋진 수염이 인상적이다.

▲ 다 그런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지중해 연안에서는 남성의 상징으로 수염을 길렀다. 수염이 없는 남자는 동성애자로 여길 정도였다. 출신 지역의 전통일 뿐 교리와는 아무 상관 없다.

--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정교회가 생소하다.

▲ 신약성경은 대부분 그리스어로 쓰였고 그리스 문명권을 중심으로 전파됐다. 5대 총대주교청(로마·콘스탄티노플·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예루살렘) 가운데 로마 총주교청이 11세기에 천주교로 떨어져 나가고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분리됐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 한국정교회의 역사는 수난으로 점철됐다.

▲ 믿음의 끈이 이어져 온 것 자체가 기적이다. 1900년 러시아공사관에서 성찬 예배를 올린 것이 한국정교회의 시작이었는데 러일전쟁과 볼셰비키 혁명을 거치며 신도들은 고아 신세가 됐다. 1951년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그리스 군종신부가 흩어진 신도들을 모아 한국정교회의 명맥을 이었고 1955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 관할로 편입됐다. 남북미 관구, 뉴질랜드 관구에 속했다가 2004년 한국관구로 독립했다. 전국에 성당 8개와 소성당 4개가 있고 남녀 수도원이 하나씩 있다. 세례 교인은 4천 명이고 사제는 10명이다.

-- 성니콜라스 대성당이 축성 50돌을 맞았다.

▲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정교회 성당이다. 2005년 울산의 성디오니시오스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한국의 유일한 비잔틴 양식 건물이었다. 이콘이라고 불리는 성화(聖畵)도 아름답고 한국정교회의 역사를 담은 각종 성물(聖物)도 전시돼 있다. 한국정교회 신도들에게는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의 성소피아 대성당만큼이나 상징적인 존재다. 니콜라스 성인의 축일인 12월 6일에는 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를 모시고 50돌 기념 예배를 올렸다.

-- 신도는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 인근 주민도 있고 멀리서도 찾아온다. 우리는 신도를 불리기 위한 선교는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부속건물 지하의 성막심 성당에서는 러시아와 동유럽 등 슬라브어권 신도들을 위해 우크라이나 출신 신부가 예배를 집전한다.

-- 1998년 12월 23일 한국으로 부임했다. 한국행을 결심한 동기가 궁금하다.

▲ 1995년 프린스턴대 대학원 시절 한국정교회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주교께서 전화로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때부터 방학을 이용해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이곳에서 봉사하기로 결심했고 1998년 박사학위를 받은 이튿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영국 옥스퍼드대 신학과와 캐나다 대교구 등에서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곳에는 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정교회가 지니고 있는 소중한 보물을 대부분의 한국인이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 대주교로 착좌한 지 10년을 맞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세운 목표를 얼마나 이뤘다고 생각하는가.

▲ 이미 4세기 전후에 위대한 교부(敎父)들이 성경에 관한 숱한 질문에 관해 완벽한 답변을 해놓았는데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해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교부들이 밝혀놓은 진리를 책이나 인터넷으로 한국인에게 알리는 것이 내 사명이다.

-- 조성암(趙聖巖)이란 한국 이름은 누가 지었나.

▲ 내가 지었다. 조그라포스란 성과 암브로시오스란 이름에서 맨 앞글자를 땄고 중간에 '거룩하다'는 뜻의 '성(聖)'자를 넣었다. 암(巖)은 교회의 반석(盤石)이 된 사도 베드로처럼 굳건한 믿음을 상징한다.

-- 지난해에는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 정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가맹 교단으로서 오랫동안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해왔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분열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면 우리의 말은 큰 힘을 얻고 교회 밖에서도 권능을 지닐 것이다.

-- 한국은 다종교 사회면서도 여러 종교가 비교적 큰 충돌 없이 공존해왔으나 최근에는 개신교와 이슬람의 갈등이 불거질 조짐을 보여 우려를 낳고 있다.

▲ 갈등을 줄이려면 서로 만나 대화해야 한다. 멀리 떨어진 채 돌멩이를 던지기만 하면 문제가 커질 뿐이다. 화해의 원천은 사랑과 진리다. 종교라는 기름을 불 속에 넣어 더 큰 불길을 만들지 말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상처를 치료하는 데 써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극단적이고 광적인 일부 집단은 큰소리를 내거나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다.

-- 지난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먹고살기 바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니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늘어나는 것이다. 모든 아이가 부모의 정을 느끼며 자랄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한국인들이 외국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이제는 자주 마주치다 보니 편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 다름에 적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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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오스 한국정교회 대주교가 정교회의 역사와 예수 탄생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일부 정교회는 다른 날에 성탄절을 쇠기도 한다.

▲ 러시아 등지에서는 러시아력에 따라 13일 뒤인 1월 7일이 성탄절이다. 우리는 12월 25일이 성탄절이다. 슬라브어권 신도들을 위해 1월 7일에도 성탄 예배를 올린다. 부활절(춘분 후 보름이 지난 뒤 첫 주일)도 어떨 때는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레고리력을 따르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내년 부활절은 4월 21일인데, 율리우스력을 고수하는 정교회는 4월 28일이다.

--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자에게도 성탄 메시지를 전해 달라.

▲ 예수의 제자들이 엠마오로 갈 때 부활한 스승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땅의 모든 이주민은 예수의 다른 모습이다.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처럼 외국인을 반갑게 맞아야 한다.

-- 2004년 용인의 한국외국어대 그리스·불가리아어과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예전에는 쉬는 시간에 운동도 하고 친구끼리 대화도 나눴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친구들과 가까워지라고 일부러 그룹 과제를 내주기도 하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치료가 필요하다.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건 좋은데 고유의 전통까지 버리지 말기 바란다. 또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쓰는 것도 안타깝다. 내면이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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