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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노무현 국민장, 장군 한 명도 안 가…보수언론 그땐 왜 침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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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조문 논란’을 보면서…과거 자녀에게 보낸 편지 공개한 예비역 대령



경향신문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사찰 지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투신한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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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장례식이 지난 11일 끝났지만 뒷말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예비역들과 보수언론이 “현역 군인들이 정권 눈치를 봐서 빈소에 조문하지 않았다”고 논란을 키우면서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서 열린 이 전 사령관 안장식에는 현역 준장인 이태명 육군 헌병실장이 현역 장성 대표로 참석했다.

군 통수권자 추모한다는데

사단장 ‘군복 벗고 하라’ 해

그날 이후 숱한 고초 겪어


예비역 중장 ㄱ씨는 “이 전 사령관 빈소에 현역 군인들이 정권 눈치를 봐서 조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하나의 매도”라며 “만약 정권 눈치를 보고 조문을 기피했다고 핑계를 댔다면 군인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문을 다녀온 예비역 준장 ㄴ씨는 “(편가르기 하려는) 일부 예비역들 태도가 오히려 이재수 장군을 욕먹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현역 군인 조문 안 했다고

비난하는 예비역·언론에

‘자신들 과거 돌아보라’ 일침


지난 10월 말 전역한 김모 예비역 대령(육사 41기)이 과거 연대장 시절 딸에게 보냈던 편지를 최근 기자에게 공개했다. 김 대령은 이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전 사령관 빈소에 현역 군인이 조문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일부 예비역들을 비판했다. 보수·우익 정권 당시 자신들이 현역 시절 했던 모습을 되새겨보라는 취지였다.

김 전 대령은 야전부대 연대장으로 근무할 때인 2009년 군 통수권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했던 일로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특히 이 전 사령관 조문과 관련해 군인 의리 등을 말하는 보수언론 기사를 보고, 기무부대와 많은 악연을 가졌던 당사자로서 자신이 겪은 일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 전 대령의 군 생활은 노 전 대통령 조문 이후 불이익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특전사령부와 미 중부사령부 등에서 파견근무도 했지만, 해외파병 부대장 지원에서는 명백한 이유도 없이 탈락했다. 보직도 받지 못하고 대기근무만 1년가량 했다. 급기야 부대 회식 자리에서 기무부대장이 김 전 대령을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 전 대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현역 장군들이 군 통수권자였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단 한 명도 조문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는 왜 보수언론이 침묵했나”라고 했다. 또 “군인이 정치적 사안에 개입한 게 문제지, 보수·우익에 충성하는 게 정치 중립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도 했다.

힘센 편에 서 있어야

편하게 산다는 깨달음에

문제를 제기한 노무현…

추모하고픈 부하들에게

참배 기회 주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국민장이 5월29일로 결정되었다. 연대 참모 중 인사과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구해다오. 조문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으니 연대장실에서 참배하겠다.’

아빠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은 이 나라에서는 힘이 센 세력과 한편이 되어야 좀 편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힘이 센가, 누가 권력자의 편에 서 있는가? 이것이 판단의 기준이며, 힘 없는 편에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힘든 것인가를 깨닫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로 진행된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을 힘센 자의 편에 세워야만 그 자식들이 밥먹고 할 말을 하고 살게 된다는 것을 수백년간 역사에서 보았고 수십년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 뻔한 상식과 경험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 스스로 그 문제 해결의 최고책임자가 되었다.

육사에서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관생도 신조를 가르친다. 그런데 현대사에서 험난한 길을 걸은 사람들은 육사 출신들에 대항하여 목숨 걸고 싸우며 투옥되고 죽임을 당한 운동권 사람들이다. 세 명의 대통령, 수십명의 장관과 총리를 배출하고, 장군의 대부분을 탄생시킨 육사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현실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비현실이며, 그 가치는 완전하게 전도되고 조롱당해왔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한 명은 죽었고 두 명은 감옥에 갔다. 그들은 육사가 만든 이상이며 모두가 추구하는 모범 자체였다. 난, 그들의 불행한 삶이 군인들에게 어떤 자극을 주고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무현의 존재를 보고서, 이제껏 힘센 자들이 느낀 심정은 이질감이면서 불편함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모욕이었다.

실상, 우리 역사에서 국방비를 가장 많이 투입한 시기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이다. 그는 독립국가의 안보에는 감당해야 할 부담이 명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방향으로 군인들이 책임감을 가질 것을 명령한 군 통수권자였으며 국가 예산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국민장이 진행되던 날, 나는 그를 추모하고 싶은 부하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서 아빠 사무실의 영정과 촛불을 당번실 옆으로 옮기고 조문하고자 하는 군인들에게 자율적인 참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공지토록 했다.

6월5일 사단장은 정치적 행위를 하려거든 군복을 벗고 하라고 했고…. 아빠의 행위는 청와대에도 보고되었다고 한다. ○○야. 이 나라에는 노무현이 수천명 더 필요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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