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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기고]무기수 김신혜의 구속 상태 재심은 헌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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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7일 김신혜씨의 아버지가 전남 완도군의 한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김신혜씨가 평소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게 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봤다.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김신혜씨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하며 일체의 노역도 거부하고 사실상 가석방의 기회도 포기한 채 18년째 복역 중이다.

경향신문

지난 9월28일 대법원은 김신혜씨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2015년 1월 재심 청구 후 3년이 넘게 걸렸다. 한편, 재심법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죄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구속 상태에서 재심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기본권을 제한할 때 준수해야 하는 핵심적 헌법원리로서 ‘적법절차원칙’(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제한은 반드시 합리적이고 정당한 법률에 근거해서 정당한 절차를 밟은 경우에만 유효)이 처음으로 우리 헌법에 명문화됐다. 헌법 제1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경찰·검찰 등 국가기관은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 실체적 진실(유무죄) 발견에 앞서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공권력이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실체적 진실이 유죄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게 헌법 정신이다. 김신혜씨 사건은 대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통해 당시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고, 피의자의 의사에 반해 현장검증을 강요했으며, 조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헌법상 적법절차원칙 위반이 확인됐다. 이미 공권력의 적법절차 위반으로 인해 처벌할 수 없는 것이 확인된 이상, 실체적 진실은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 김신혜씨를 위해 따져볼 필요가 있을 뿐이다. 이때 형사법의 대원칙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in dubio pro reo)’가 지켜져야 함은 물론이다. 헌법 제12조 제7항은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에는 …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처음에 자백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 자백이 제3자의 기망(속임)에 의한 허위자백이었음을 피의자 상태에서부터 줄곧 주장했다. 남동생을 범인으로 잘못 알고 남동생 보호를 위해 허위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직접증거(물증)도 없고, 자백이 철회된 상황이다. 보강증거로 채택된 간접증거(노트 등)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없는 압수수색에서 수집되어 사실상 증거로서 효력 자체가 없다. 헌법 제12조 제3항 영장주의 위반에 해당해서다. 또한 당시 경찰의 폭행과 협박, 허위자백 강요가 있었다고 그녀는 주장하고 있다. 김신혜씨 사건은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에 위반되어 처벌할 수 없는 피고인을 18년째 처벌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재심법원이 피고인을 석방하지 않고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도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 당장 석방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재심재판이 지체되어서도 안된다.

남경국 | 헌법학 연구자·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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