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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혁명’ 열차 탄 러시아와 함께 달린 인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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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고·토냐·라라·코마롭스키/다양한 인물들 상징적 삶 통해/인간 존엄과 삶의 가치 되새겨/20세기 가장 중요한 러 문학작품/새롭게 완역… 제대로 감상 기회

세계일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박형규 옮김/문학동네/1만3500원


닥터 지바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박형규 옮김/문학동네/1만3500원


영화 ‘닥터 지바고’가 유명하지만, 소설 닥터 지바고는 국내에 덜 알려져 있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문학동네가 이번에 세계문학 시리즈로 완역해 출간했다. 영화에서는 읽을 수 없는 기막힌 표현들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 준다. 소설을 보면 원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소설의 묘미다.

닥터 지바고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러시아 문학작품으로 인식된다. 폭압적인 스탈린 시대, 전체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소설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저항을 의도한 게 아니었다. 독자들이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가장 절박하고 절망적인 시대에 쓰인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증언이며, 삶의 힘과 인간의 존엄을 되새기고자 했다. 저자는 “예술과 복음, 역사 속 개인의 삶, 그 밖의 많은 것에 대한 나의 견해를 표현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소설의 무대는 1905년 러시아 혁명 전야부터 1914년 1차세계대전과 이어지는 내전, 1922년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기까지 대격변의 시대였다.

소설 설정은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자유로운 개인을 상징하는 지바고, 가정을 상징하는 토냐,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 라라, 혁명을 대표하는 파샤와 악을 대변하는 코마롭스키를 주축으로 펼쳐진다. 소설 출간 직후 파스테르나크는 소비에트작가연맹에서 제명된다. 작가 생전 모국에서는 출간되지 못했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도 그는 반혁명적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창작활동은 접은 채 번역으로 생계를 이었다. ‘먹구름 속의 쌍둥이’ ‘방책을 넘어서’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시인으로서 먼저 주목받았다. 파스테르나크는 정치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소설을 쓰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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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소설 닥터 지바고에 대해 “애초 저항의 소설이 아니었으며, 가장 절박한 시대 인간의 위대한 삶의 방식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첫 장면에서 소설이 던지는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소년 유리 지바고는 흐느껴 운다. 장례 행렬에 길을 비켜주는 행인들이 누구의 장례냐고 묻는다. ‘지바고의 장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주인공의 성 지바고(Живаго)는 러시아어와 교회슬라브어의 지보이(живой)에서 파생한 말.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파스테르나크는 대부분의 소비에트 작가들처럼 혁명의 한복판에서 생의 진폭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톨스토이 소설의 세계로, 인본적인 세계로 돌아갔다. 그의 목표는 자유정신을 되찾고 현대의 정신에 러시아 정신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당시 파스테르나크가 살았던 엄혹한 시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톨스토이 소설 세계로의 귀환은 매우 해방적, 어쩌면 돌발적 행동이었다.

유리 지바고는 톨스토이의 인물들처럼 자연과 예술을 사랑했다. 묵상하는 삶을 추구하고, 인간 삶의 연속성을 주장했다. 또한 자유롭지 않은 세상의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식적인 희열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벨문학상은 파스테르나크에게는 비극이었다. 노벨상 결정은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수상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1989년 대리 수상했다.

1965년 데이비드 린 감독, 오마 샤리프, 줄리 크리스티 주연의 동명 영화가 크게 성공하면서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 끝없이 달려가는 열차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상징이 되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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