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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영화평론가 황영미, 첫 소설집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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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따뜻한 위안 …인간의 본질 사색하게

영화 평론가·소설가 황영미의 ‘구보씨의 더블린 산책’

영화평론가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황영미가 1992년 ‘모래바람’ 으로 등단 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26년간 써내려온 작품을 한데 모아 첫 소설집을 선보였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다채로운 스타일로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온 황영미가 들려주는 8편의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독자에게 던지는 다양한 삶의 고민에 대한 긍정적 해답과 따뜻한 위로가 되기 충분하다. 1992년 등단작 ‘모래 바람’과 1996년 통일문학작품 현상공모 단편소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강이 없는 들녘’ 등 장기간에 걸쳐 발표한 7편의 작품과 이번에 첫선을 보인 표제작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출판사 솔)까지 총 여덟 편의 소설을 모아 엮은 이 소설집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도서로도 선정된 바 있다.

세계일보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 선보이는 표제작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형성 밑그림을 허구적으로 상상해 상호 텍스트적으로 구축한 소설이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플롯을 패러디해 구성한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에 대해 우찬제 평론가는 해설 부분에서 “현실에서 소외된 국외자인 예술가가 어떻게 세계의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 대상을 체험하고 인식하고 상상하고 추론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등단작 ‘모래바람’ 에서 나름대로 철저한 의사이고자 했던 주인공이 의료 사고로 환자가 죽고 그로 인해 유족들과 민사소송을 하면서 자신을 되짚어보게 된다. 비록 법정 판결에서는 승소했지만, 그 후에도 환자의 가족은 병원을 찾아와 계속 원망을 퍼붓는다. 의료사고로 숨진 환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침을 뱉으며, “이 병원 망하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져. 장을”이라고 저주를 퍼붓는 상황에서 그는 ‘모래바람’에 갇힌 형상이 된다.

‘전람회의 그림’에서는 현실과 예술의 미학적 승화를 꿈꾸었던 화가 민기는 종종 참여지향적인 운동권 동료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자유롭고 예술적인 표현”을 하고 싶었던 그는, 화재로 인해 검은 폐허가 된 봉제공장을 본 충격을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화폭을 구성하게 된다.

‘바다로 가는 막차’에서 교사 출신의 주부는 도박에 중독된 남편과 가부장의 권위를 중히 여기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삶의 길을 잃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처 없이 나와 바다로 가는 막차를 타게 되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바다로 다가갈수록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된다.

‘강이 없는 들녘’에서 조각가인 주인공은 북한 출신인 시아버지와 시댁에서 일하던 덕만과의 땅을 사이에 둔 갈등을 중재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다음, 고통 속에서 자기 작품에 몰입한다. 현실에서의 실패를 예술에서의 형상화로 전복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예술 의지가 눈길을 끈다.

‘암해暗海’에서 주인공인 윤진호의 선장은 선원들과 육지에 있는 부인과의 갈등으로 인해 심하게 갈증을 일으키며 고독해 한다. 선원들과 부인 모두 자기만의 본위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다 선박의 냉장고와 엔진도 고장이 나서 심한 마음고생을 한 주인공은 갈등 상황 속에서도 벗어날 수 없고 감내해야 하는 선상 생활에서 선장의 역할을 생각하며 목숨을 내건 항해에서 모두들 무사함에 감사하며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끝없는 아리아’는 식욕을 절제하지 못해 애를 먹는 간호사가 자신의 의지력에 대한 자괴감과 주변의 시선에 시달리면서 손녀가 끼니를 거르면 불안해하는 할머니와도 갈등을 겪는다. 그녀를 옥죄어오는 삶의 구속이나 관계 따위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자신의 의지박약 말고도 다른 다이어트 실패 원인을 찾았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낀다. 목표라는 실재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사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리트머스 교실’에서 주인공 세진은 경쟁이 심한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곳을 어렵사리 벗어난다. 심한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던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안학교인 리트머스 학교로 전학한다. 세진의 담임인 윤리 교사 김인수는 대안학교의 이념에 걸맞은 가치지향적인 교육을 실천하고자 한다. 하지만 새로운 수학 교사가 부임하면서 그의 교수 학습 분위기는 스스로 자기 항해를 위해 노를 잡고 저어나가려는 세진의 가치와 충돌한다. 안타깝게도 갈증 나는 질문은 폭력으로 답해지며 갈등이 극에 달한다.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프리퀄을 상상하여 소설가 구보 씨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집필하기 전에 동경에서 함께 공부한 아일랜드인 친구 던스터 씨의 초대를 받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공간인 더블린을 함께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황영미는 예술적 탐문을 계속해온 작가로 우찬제 평론가는 “황영미 소설 속 예술가들은 산문적 상황과의 갈등 속에서 ‘나의 봄’과 ‘타자의 봄’을 가로지르며 나름대로 세계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그 발견된 의미를 나름의 예술적 질료를 통해 표현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한 바 있다.

한편 지은이 황영미는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이며, 영화평론가이다. 1992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모래바람’으로 등단했으며, 1996년 단편소설 ‘강이 없는 들녘’으로 통일문학작품 현상공모에 단편소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영화평론 활동으로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했으며, 세계일보에 ‘황영미의 영화산책’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원화시대의 영화읽기’, ‘영화와 글쓰기’, ‘필름 리터러시’ 등이 있다.

황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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