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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첫월급 기부 쌍둥이 소방관 "돈 없어졌는데 기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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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쌍둥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서른살 김수현·김무현씨 형제

"영 쑥스러운데…."

지난 11일 오후 똑같이 생긴 장정 두 사람이 소방관 정복을 입고 경북 청송 안동소방서 부동119지역대 관내에서 머리를 긁으며 본지 카메라 앞에 섰다.

석 달 전 나란히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쌍둥이 소방관 김수현(30) 소방사와 김무현(30) 소방교다. 3분 일찍 태어난 김수현 소방사가 형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국내 첫 '쌍둥이' 아너 회원"이라고 했다. 쌍둥이의 아버지 김점곤(54) 씨도 아들들보다 한 해 앞서 모금회에 1억원을 내 '3부자(父子) 아너 회원'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11일 오후 경북 청송군 부동면 119지역대에서 일란성쌍둥이 김수현(30·왼쪽) 소방사, 김무현(30) 소방교가 씩 웃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각각 1억원 기부를 약속해 ‘국내 첫 쌍둥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두 사람이 왜 헤어스타일까지 똑같냐”고 하자 “우리 둘 다 미용실 가는 대신 화장실 거울 보고 바리캉으로 직접 밀어서 그렇다”고 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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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는 경북 봉화에서 나고 자라 작년 7월 경북 소방관 시험에 동시에 합격했다. 첫 월급 160만원을 받던 날 아버지에게 "무슨 선물 사 드릴까" 묻자 아버지가 "난 됐고, 기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고민 끝에 5년간 각각 1억원 기부를 약정했다. 첫 월급도 전액 부었다.

형제에게 소방관 시험을 권한 이도 아버지였다. 그는 봉화 토박이로 영주에서 '신도물산'이라는 연 매출 50억원의 사무기기 제작·유통 업체를 운영해왔다.

"저는 사실 아들 둘이 '내무 공무원' 되는 게 꿈이었어요. 아들들이 행정고시·사법고시 봐서 나라에 봉사하면서 나라 녹을 먹는 공무원이 되면 얼마나 좋나 생각했어요. 근데 둘 다 고시 볼 스타일이 아니니까 '그럼 소방관이 딱이네' 했어요. 봉사하면서 돈도 버는 직업이잖아요."

취재진이 "박봉 아니냐"고 묻자 아버지 김 대표의 목소리가 커졌다.

"생명수당도 있고 근무외수당도 있어서 할 만합니다. 자영업자는 죽어라 일해도 적자 나는데,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소방관이 '박봉으로 못 산다' 하면 안 됩니다. 모금회에 약속한 기부금도 둘이 스스로 벌어서 낼 겁니다. 보태줄 생각 없냐고요? 없습니다. 기부하면 나라에서 연말정산 혜택도 줍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엄하게 키웠다. 동네에서 알부자 소리 듣고 살지만, 두 아들에게 늘 "검약하고 남을 도우라"고 했다. 자신도 사회 초년병이던 1990년부터 크고 작은 기부를 해왔다. 주변 학생들 학비도 대주고, 불우 이웃 성금도 1000만원 넘게 여러 번 냈다.

"처음에 복사기 대리점으로 시작했는데 인근 학교에서 복사기 고쳐 달라 해서 가보면 못사는 애들 많아요. 복사기가 아직 대중화가 안 돼서 복사 한 장에 100원이었는데 그거 못 내는 애들 보면서 울컥했어요."

쌍둥이 형제는 원래 목포해양대에 나란히 가려고 했다. 아버지가 "배 타면 오기도 생기고 인내력도 생긴다. 더구나 나라에서 공짜로 공부시켜주고 군대도 면제해주는 학교 아니냐"고 권해서였다. 동생은 아버지 소망대로 목포해양대에 가고, 형은 수도권에 진학했다. 형이 학군단을 거쳐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동생은 3년간 배를 탔다. 앞으로 소방관 월급에 각각 장교 월급, 선원 월급 모은 저축을 보태 1억원을 완납할 계획이다.

형 수현씨는 "어려서부터 체력 쓸 일 많고, 남 도울 수 있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며 "월급 받으면서 자기 맡은 일 하는데 사람들이 고맙다고 해주는 직업"이라고 했다.

"기부해서 돈이 없어지니 기분 좋아요. 착한 사람 되는 거 같아요. 스무 살 때부터 헌혈 꾸준히 해서 표창받았는데, 20분 누워서 피만 뽑으면 되니까 큰 거 아니거든요.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런 사소한 걸로 사람 살린다고 생각하니 좋았어요. 기부도 마찬가지예요."

동생 무현씨는 "소방관 되면 삶의 보람이 있고, 자식들한테도 자랑할 수 있고, 멋있을 거 같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 아니었으면 아너 가입까지는 엄두를 못 냈을 거예요. 아내도 소박한 여자라 뭐라 안 해요. 어머니도 내년에 가입하신대요."

아버지 김 대표가 "제가 안사람한테 '가족이 다 가입해야지…. 당신만 안 했다'고 했더니 안사람이 자기도 하겠다더라"고 했다. "뭐, 표정은 떨떠름합디다."

※후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



[청송=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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