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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쉼 없이 달려온 당신, 지금 아니면 다음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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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트북'의 원작자 스파크스, 부모님의 죽음, 아들의 자폐 판정…

불행 이기기 위해 선택한 일중독… 형과 떠난 여행에서 희망을 찾다

조선일보

일 중독자의 여행

니컬러스 스파크스 지음|이리나 옮김|마음산책|416쪽|1만5800원

"당신 같은 행운을 타고나면 기분이 어떤가요?"

미국 소설가 니컬러스 스파크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빠짐없이 받는다. 그의 소설은 발표하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됐다. '노트북' '병 속에 담긴 편지' '워크 투 리멤버' '디어 존' '베스트 오브 미'….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영화들의 원작 소설이 그의 작품이다. 스무 편 넘는 소설을 썼는데 전 세계에서 총 1억권이 팔렸다. 그렇지만 그는 '당신은 행운아인가'란 질문에 답을 망설인다. 로맨스 소설을 주로 써 왔지만 정작 삶은 고통의 구덩이였다.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달콤한 허구로 눈가림을 해 왔다. 이 책은 마음속에 뿌리박힌 상처로부터의 탈출기이자 치유기다.

2002년 봄, 3주짜리 세계여행 홍보 책자 한 권이 우편으로 날아왔을 때 스파크스는 허덕이고 있었다. 그는 잠시도 쉴 줄을 몰랐다. 항상 전진, 전진, 전진했다. 소설 쓰는 짬짬이 다섯 아이를 돌보고, 청소하고, 전진, 전진, 전진. 하루에 겨우 세 시간 잘까 말까 한데도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렇게 일하는데도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매일 아침 눈을 떴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실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계여행 책자를 읽으며 그는 생각한다. "그래, 언젠가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이 아니면…" 하고 마음을 굳힌 그는 동행으로 형을 택한다. 육아에 눈코 뜰 새 없는 아내도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다"며 등을 떠민다.

조선일보

일 중독자인 저자는 형과 떠난 세계 여행에서 치유의 실마리를 찾는다. 형제는 3주간 이스터섬, 타지마할, 앙코르와트(위부터) 등을 다녔다. 형제 사진 중 저자는 오른쪽. /마음산책·Corbis/토픽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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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잉카 유적지, 거인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 앙코르와트와 타지마할 같은 여행지에 대한 감상은 이 책에서 중요하지 않다. 형과 함께한 3주 동안 저자는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 과거의 삶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잔잔했던 저자의 감정은 여행 3주 차에 접어들면서 요동친다. 상실로 얼룩진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어떤 삶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걸 깨닫게 된다.

육상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는 아킬레스건을 다친다. 낙담한 그에게 어머니가 책을 써 보라고 권한다. 로스쿨 진학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식당 서빙, 부동산 감정사, 제약 회사 영업직 등을 전전한다. 1989년 어머니가 낙마해 숨진다. 1995년 소설 '노트북'이 워너 북스에 100만달러에 팔리며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짓는 것 같았으나 이듬해 둘째 아들이 자폐증 판정을 받는다. 같은 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2000년 5월 여동생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다. 겨우 서른세 살이었다.

그 모든 일을 겪고 나서 그는 일 중독자가 된다. 삶이 언제든 끝날 수 있으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형은 달랐다. 바쁘게 살기보다는 즐거운 삶을 택한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 없이 시큰둥한 그에게 형이 말한다. "일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지만 신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야. 넌 네가 삶을 지배하지 않고 삶이 너를 짓누르게 했어. 그게 핵심이야.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거라고!"

형은 그 불행한 일들을 말끔히 털어버린 걸까? 여행 막바지에서야 형은 고백한다. "난 아직도 우리한테 일어난 모든 일 때문에 슬퍼. 때로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그제야 저자는 깨닫는다. "우리는 상실에 다른 식으로 반응하고 있었을 뿐이야."

2004년 작인 이 여행기는 스파크스 작품 중 유일한 논픽션. 쉼표 없이 달려온 한 해와 작별하고 내년엔 다르게 살아보고픈 독자들에게 권한다. 저자는 말한다. "내게 인생은 살기보다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설사 내가 태도를 바꾸고 싶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내 잠재의식으로는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하며 그 일을 도와줄 사람은 형밖에 없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원제 Three Weeks with My Brother.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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