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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강인선의 워싱턴 Live] 美 보수논객들 "北이 원하는대로 한국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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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I 토론회서 "文정부, 언론자유 제한… 사법부 등 당파성 조장"

美北대화 지지부진하자 북핵보다 한국 비판 목소리 점점 커져

조선일보

"북한이 한국이 원하는 대로 변하지 않고, 한국이 북한이 원하는 대로 변하고 있다."

지난 11일 워싱턴의 대표적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기업연구소(AEI)'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대북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가 한 발언이다. 이날 토론회 제목은 '한국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우파 권위주의에서 좌파?'였다. 좌파 다음에 물음표를 놓긴 했지만 한국에 권위주의 성향이 등장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이 제목은 워싱턴에서 화제가 됐다.

AEI는 "북핵 위기와 한·미 군사 동맹이 한반도에 대한 국제적 보도를 지배해왔다"면서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란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 자유를 제한하고 사법부와 공무원 조직에서 당파성을 조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고도 했다.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AEI 선임연구원 사회로 진행한 토론회엔 이성윤 터프츠대 교수,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 타라 오 퍼시픽 포럼 연구원, 스탠턴 변호사가 참석했다. 보수 성향 논객들이다.

첫 토론의 제목은 "자유를 제한하는 민주주의를 향하여? 문재인 정부하의 한국"이었다. 토론은 그간 북한 비핵화를 주로 다뤘던 워싱턴에서 최근 거의 본 적이 없는 낯선 장면이었다. 토론자들은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와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언론 자유 침해 사례까지 열거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자유를 제한하는 길로 들어섰는지' 아니면 '미국과는 다른 한국 특유의 정치 현상인지' 따졌다. 에버슈타트 선임연구원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햇볕정책 1, 2, 3'으로 분류했다. 이성윤 교수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신문은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를 안다"고 했다.

스탠턴 변호사는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에서 일하는 지인들이 한국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면서 "가장 자주 듣는 얘기는 한국 정부의 극단성(extremity)"이라고 했다. "현실이 명백히 그렇지 않은데도 통일과 평화를 빨리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맥스웰 연구원은 "북한이 매력 공세를 벌이든 정상회담을 하든 김정은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 있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했다. 타라 오 연구원은 "민주주의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다수가 잘못할 때 누가 소수를 보호하는가. 그것은 법에 의한 지배"라고 했다.

지난 1년간 워싱턴에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북핵'을 통해서 이뤄졌다. 미·북이 극한 대립에서 정상회담으로 급반전을 이루는 동안 북핵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한국 내부 상황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정부든 싱크탱크든 한국에 대한 공개적 비판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한·미 간 이견이나 분열은 북한이 의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미·북 대화가 지지부진하자 워싱턴에선 북핵 관련 토론회는 거의 열리지 않는다. 한·미 양국 전문가들의 비공개회의가 열릴 뿐이다. 대신 그간 자제했던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워싱턴의 한 한국 전문가는 최근 "한국의 역대 정부 중 비판에 이렇게 과민한 정부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비판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에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라면서, "정책 홍보나 공공 외교를 강화한들 허점이 있는 정책의 한계를 보완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워싱턴의 한국 대사관에선 이 회의를 앞두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천준호 주미 대사관 공공외교 공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한국은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도 시위대가 있을 정도로 역사상 최고 수준의 표현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43위로,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다"고도 했다.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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