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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2인1조’ 실종…태안 비정규직 참사, ‘구의역 김군 사건’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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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발전소 사고, 개인의 실수? “컨베이어벨트가 아닌 외주화가 죽였다”

‘2인 1조’ 따르지 못한 김용균씨 죽음, 2년 전 구의역 김군 죽음과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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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새벽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가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2016년 5월 19살 김아무개 군이 서울 구의역에서 홀로 안전문을 수리하다 기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진 지 2년 7개월 만이다. 두 사람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고, ‘2인 1조’로 작업하지 못하고 홀로 일하다 숨졌다. 노동계에선 되풀이되는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중단하라’는 외침이 나오고 있다.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대책위)는 12일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힘들고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용 절감만 외쳤던 발전소 운영이 하청 노동자를 죽음에 몰아넣고 있다”며 “정부가 바뀌어도 되풀이되는 죽음을 막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고 김용균씨는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납시다’는 피켓을 들고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을 만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만 하고 돌아보지 않는 대통령, 책임지지 않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역시 “우리 아들이 (하청업체로) 가게 된 이유는 고용이 안 됐기 때문이다. 서류를 들고 반년 이상 헤매다 찾은 곳이 여기였다”며 “대통령께서 고용을 책임지겠다고, 우리 아들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라며 눈물을 흘렸다.




고 김용균씨의 죽음을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는 한국서부발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대책위와 한국서부발전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입사 3개월차인 김씨는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연료 설비운전 파트’ 소속 직원이었다. 이 파트 직원들은 4조2교대로 12시간씩 교대근무(주간-야간-휴무-휴무)를 했다. 김씨의 조는 5명이었다. 5명이 6㎞가량의 컨베이어벨트를 돌며 현장을 점검했다. 대책위는 “하청업체의 업무지시서에는 설비 운영이 지연되지 않도록 설비가 떨어지면 즉시 제거하라고 되어 있다”며 “김씨는 (업무지시서에 따라) 막대기로 (컨베이어벨트에 떨어진) 석탄을 치우려다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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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고 이후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김씨가 자신의 업무가 아닌 일을 하다 사고가 났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는 “김씨의 업무는 순찰하면서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라며 “이상이 발견되면 보고를 해야 하고, 낙탄 치우는 업무를 하는 사람이 내려와 석탄을 제거하는 게 맞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이 사고 원인으로 김씨의 규정 위반을 지적하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2인 1조’ 근무만 지켜졌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고 당시 다른 사람이 컨베이어벨트를 멈췄다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민주노총은 “김씨가 하던 일은 원래 발전소 정규직이 2인 1조로 하던 업무였는데, 발전소 외주화 구조조정을 통해 하청업체로 업무가 넘어갔다”며 “그동안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2인1조 근무만 받아들여졌어도 김씨는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2인 1조’ 근무가 불가능했던 이유는 ‘경쟁 입찰’ 시스템 때문이었다. 한국서부발전은 2015년 7월 석탄설비 운용·정비 사업을 경쟁 입찰했고, 한국발전기술이 해당 사업을 낙찰받았다. 문제는 한국서부발전의 발주가 해당 영역의 인원을 정하는 형태가 아닌 사업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낙찰을 받기 위해선 낮은 금액을 써내야 하고, 하청업체는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2인 1조’를 운영하지 않았다. 대책위는 “김군을 죽인 것은 컨베이어벨트가 아니다. 발전사가 직접 운영해야 할 업무를 민영화, 경쟁 도입 운운하며 하청업체로 넘긴 외주화가 죽였다”며 “서부발전은 뻔뻔하게 개인의 실수 운운할 것이 아니라 고인과 고인의 가족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용균씨의 죽음은 구의역 김군의 죽음과 닮았다. 2016년 5월28일 서울메트로의 안전문 유지 보수 업무를 맡은 하청업체 은성피에스디의 강북사무소 ‘갑판 A팀’ 소속 김군은 ‘(고장) 접수 1시간 이내에 출동을 완료’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맞추느라 ‘2인1조’ 수칙을 따르지 못하고 홀로 승강장 안전문 수리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김군이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에 이상이 있다는 신고를 접수한 오후 5시께 나머지 동료들은 모두 현장에 나간 상황이었다. 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인 은성피에스디 사이에는 ‘접수 뒤 1시간 이내에 출동을 완료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지연배상금을 청구한다’는 계약이 체결돼 있었고, 김군은 동료를 기다릴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사고 이후 원청인 서울메트로의 대응 역시 한국서부발전과 닮았다. 서울메트로는 “(2인 1조로 출동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며 김군의 과실로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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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김용균씨와 김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침 이후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4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전소 상시지속 업무를 직접고용을 전환하라”고 촉구해왔다. 하지만 발전회사들은 외부 컨설팅까지 받으며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남동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 5개 발전사가 노무법인 ‘서정’에 의뢰한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컨설팅 최종보고’ 문건을 보면, 고 김용균씨의 업무였던 ‘연료환경 설비운전’ 업무는 “직접 전력 생산 업무가 아니어서 전력공급과 연관이 없을 뿐 아니라 전력 공급계통과 무관, 정전 발생에 의한 사고 위험과의 관련성 낮다”며 직접고용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대책위는 이날 한국서부발전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1시간 가까이 늦게 경찰에 신고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대책위는 “경찰과 119 소방 쪽에 접수된 최초 신고시간은 11일 새벽 4시29분인데, 한국서부발전이 발표한 최초 경찰 신고시간은 11일 새벽 3시50분”이라며 “두 신고시간 시점이 40여분이나 차이가 나는데, 그사이 서부발전이 사고 현장 증거 등을 은폐한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태안/선담은 기자, 황춘화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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