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사라지는 회식… 하더라도 점심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인 이상 주문하시면 '저녁 할인' 이벤트 대상입니다."

지난 6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사무실 밀집 지역에 있는 한 고깃집. 종업원이 정가보다 10~15% 싼 '저녁 특선'을 권했다. 오후 6시 이후 식당을 찾는 손님에 한해 깎아주는 것이다. 이 식당이 저녁 특선을 내놓은 것은 금년 여름이다. 이 식당에서 근무하는 A씨는 "작년만 해도 저녁 회식 손님만으로 매출의 80% 이상을 채웠는데, 올해는 회식이 많이 줄었다"며 "이렇게라도 해야 손님이 올까 싶어 할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실제 이날 50석 규모 식당에 손님은 두 팀 5명에 불과했다. 이날 점심시간 이 식당을 방문했을 때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녁 있는 삶'에 9시 이후 회식 급감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고 '저녁 있는 삶'이 자리를 잡으며 저녁 회식이 사라지고 있다. 회식 자체가 줄어든 데다 회식을 하더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삼성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신용카드 사용 시간대를 분석한 결과 주점을 제외한 각종 식당에서 점심시간(오전 11시~오후 2시)에 법인 카드를 이용한 건수는 전년 동기 증감률보다 9.4% 증가했다. 반면 오후 9시 이후 늦은 시간에 이용한 건수는 6.7% 감소했다.

조선비즈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지난 6일 직장인들이 1인분에 3만9000원짜리 ‘저녁 특선 메뉴’를 시켜놓고 회식을 하고 있다. 한우꽃등심 150g에 찌개가 포함된 메뉴로 원래는 4만5000원이다. 주 52시간제가 정착하면서 저녁 회식이 줄어들자 이처럼 저녁 메뉴 가격을 할인해서 내놓는 식당이 늘고 있다. /김충령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2차' 술자리를 갖더라도 일찍 자리를 파하는 경우가 늘었다. 주점에서 오후 9시 이전에 결제한 건수는 4.9% 증가했지만, 9시 이후 결제 건은 4% 감소했다. 사무 중심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점심 특선' '주말 특선' 대신 '저녁 특선'이 생겨난 이유다.

퇴근 시간 역시 빨라졌다. 시간대별 후불교통카드 이용 비중을 살펴보면 직장인들이 오후 6시 30분 이전에 교통카드를 이용한 비중은 전년 동기보다 2.4% 증가했다. 반면 52시간제 영향을 작게 받는 전문직과 자영업자는 각각 1.3%,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송도신도시의 건설 회사 직원 김모(49)씨는 "지난해만 해도 오후 6시와 7시 퇴근 버스가 한산했는데, 요즘엔 반대로 오후 9시 막차가 텅텅 빈다"고 했다.

명함 이벤트로 '물주' 확인, 예약하면 맥주 무제한 서비스도


조선비즈



서울 광화문·강남·마포 등 사무실 밀집 지역에 점포가 많은 외식업체들은 저녁 손님을 잡을 묘책을 짜내고 있다. 외식 브랜드 애슐리 클래식은 올해 초부터 점심 9900원, 저녁 1만2900원이던 식사 요금을 9900원으로 통일했다. 본래 오후 5시 이후에는 높여 받지만, 손님이 줄어서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제일제면소'도 광화문 등 오피스 타운을 중심으로 저녁 시간 6명 이상 예약하는 손님을 대상으로 '1인당 4000원에 맥주 무제한 제공' 서비스를 내놓았다. 회사 관계자는 "사무 단지에 국한된 제도로, 저녁 시간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년회도 사라지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20명 이상 단체 손님 예약이 몰려야 하는 시점인데, 작년에 재작년보다 20% 줄더니 올해는 거기서 또 20%는 족히 줄었다"고 했다.

5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50)씨는 내년 초 임대 계약이 끝나면 식당 문을 닫을 예정이다. 권씨는 "경기가 안 좋은 데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니, 굳이 비싼 임차료 내고 오피스 타운에서 가게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건물주가 임대료를 조금 내려주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싼 '먹자 상권'이나 주택가 상권으로 옮기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김충령 기자(chung@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