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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왕'같았던 마크롱, '혁명'같은 시위에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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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프랑스 마르세유 남동쪽 소도시 라 시오타에서 10일(현지시간) 노란조끼 시위대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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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취임이후 '제왕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며 유럽 속에 거대한 프랑스를 꿈꿨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혁명을 방불케 하는 '노란조끼' 시위대에 손을 들고 기존 긴축정책을 대거 포기하기로 했다. 그는 다만 자신의 개혁 노선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며 불씨를 남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4차 노란조끼 시위가 발생한 지 이틀 뒤인 10일(현지시간) 생방송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이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 사과했다. 그는 13분짜리 연설에서 "많은 프랑스 국민들이 함께 분노를 느꼈다"며 "집회 초기국면에서 제대로 답을 드리지 못했고 주의 깊지 못한 발언으로 여러분께 상처를 드렸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복지 삭감 백지화
이번 연설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내년 1월부터 현재 세후 월 1185유로(약 153만원) 수준의 최저임금을 100유로 인상하고 초과근무 수당에 붙는 세금을 없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내년부터 은퇴자들에게 적용되는 사회보장기여금 인상(1.7%)에서 월 수입 2000유로 미만 은퇴자는 제외한다며 그 외 자세한 변화는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가 11일 의회에서 설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일 3차 시위 직후 노란조끼 시위의 도화선이었던 유류세 추가 인상안을 폐기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시위에서 쟁점이 됐던 부유세(ISF) 복구는 거부했다. ISF는 지난 1980년대 사회당 정부 당시 도입된 세제로 보유 자산이 130만유로가 넘는 개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다. 마크롱 정부는 해당 제도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과세 대상을 부동산으로 줄여 부동산자산세(IFI)로 재편했으나 '부자 정권'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에 일자리가 필요하다며 "여기서 뒤로 물러나면 프랑스는 약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유세 복구 대신에 탈세와 조세회피 등을 강력히 단속하고 공공지출 감시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세금을 더 신속하게 내리고 정부지출을 통제하는 등 강력한 조치들로 사회경제적 위급함에 응답할 것이지만 유턴을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연설 직후 노란조끼 시위대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위대 일부가 마크롱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노란조끼'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며 되레 분개했다고 전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약속이 반쪽짜리 조치라며 오는 15일에 5차 노란조끼 시위를 열자는 의견도 나왔다.

■'왕'같은 대통령이 혁명 불 지펴
파리정치대학의 토마스 스네가로프 정치학 교수는 "노란조끼 시위대에서 마크롱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사람들이 '왕의 목을 잘라야 한다'는 프랑스 혁명 분위기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대 최연소로 당선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국가적 비상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베르사유 궁전에 의원들을 모두 불러 취임 기념 연설을 하는 등 '임금 놀이'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지난 9월에도 일자리를 달라는 실업자에게 "길 건너에 널렸다"는 비현실적인 말을 해 구설수에 올랐고 NYT는 마크롱 대통령이 오직 자신의 최측근들과 소통한다고 지적했다. 파스칼 페리뉴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마크롱 대통령은 일반 대중들이 직면한 문제에 무감각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했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은 국내 현안보다는 나폴레옹이나 과거 절대왕정처럼 유럽 내 영향력 확대에 힘을 쏟았다. 그는 유럽 방위군 창설,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공동 예산 구축 등을 주장하며 영향력이 줄어드는 독일을 대신해 유럽의 지도자가 되려 했다. 피에르 비몽 전 주미 프랑스 대사는 "젊은 대통령이 유럽의 쇄신과 개혁을 촉구하는 야심찬 제안을 내놨지만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외신들은 일단 노란조끼 시위가 정말 프랑스 혁명처럼 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았고 의회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4차 시위 참여자는 13만6000명으로 29만명이 거리로 나왔던 지난달 1차 시위에 비해 반 이상 줄었다. AP통신은 과거 1968년 68혁명도 여름 휴가계절이 가까워오자 잠잠해졌다며 노란조끼 시위 역시 성탄절 휴가가 가까워지면 기세가 꺾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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