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3월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국무회의에서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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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보수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6~30일 전국 성인 251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한 결과, 이낙연 총리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5.1%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고, 황 전 총리가 12.9%로 뒤를 이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전 총리가 지난 9월 7일 <황교안의 답> 출판기념회를 연 지 약 석 달 만이다.
■유기준 의원·오세훈 전 시장 등 러브콜
황 전 총리가 떠오른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보수의 중심인 자유한국당이 대표로 내세울 인물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크다. 홍준표 전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후보로 거론되지만 셋 모두 당내 주류인 잔류파, 즉 친박 계열은 아니라는 점에서 확장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잔류파에는 이 정도 급 인물도 안 보이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잔류파 의원들이 황 전 총리를 자꾸 부각시킨다는 지적이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유기준 의원이 대표적이다. 유 의원은 지난 9월부터 친박계 의원 6명과 황 전 총리의 식사 자리를 주선했다. 이후에도 유 의원은 황 전 총리에 대해 “차기에 우리 당을 이끌 수 있는 사람, 우리 당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전 총리가 ‘러브콜’에 반응한다는 점이 또 다른 이유다. 황 전 총리는 출판기념회 이후 페이스북과 강연 등을 통해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대학교 강연 직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한국당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여러 이야기를 잘 듣고 있고 여러 생각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실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황 전 총리가 제2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둘 사이 공통점이 여럿 보이기 때문이다. 반 전 사무총장은 지난 대선에서 출마를 선언한 지 20일 만에 불출마를 결단해 모두를 당황케 했다. 먼저 현실정치 경험이 없다는 점이 크게 부각된다. 이는 ‘오염’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장점이지만 단점으로도 꼽힌다.
현재 한국당에서 황 전 총리만큼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은 없다. 포털사이트에서 황 전 총리와 관련된 키워드 중 하나가 ‘인품’이다. 탄핵과 분당, 이후 복당과 지방선거 패배, 비상대책위원회와 전원책 등 집안싸움 모습만 보여줬던 한국당이 황 전 총리를 얼굴로 내세운다면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황 전 총리가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이 ‘판’을 견디지 못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황 전 총리를 오래 보좌한 한 관계자는 “실제로 황 전 총리가 인품이 정말 좋다. 보통 금수저들은 아랫사람을 종처럼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법무부 장관 시절 말단직원까지 잘 챙겼다”면서 “험한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최근 황 전 총리와 만남을 가진 한국당 한 관계자는 황 전 총리에 대해 “정치감각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꼬집었다. 보통 정치인이라면 원내대표, 당대표, 대선후보 이런 식으로 단계를 밟아나가게 마련인데 황 전 총리는 자신을 곧장 당대표 혹은 대선후보로 ‘추대’해주길 바라는 듯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민생행보 잘못하면 조롱거리”
‘인품 좋은 금수저’ 배경도 반 전 사무총장과의 공통점이다. 문제는 이 배경이 결과적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과 황 전 총리 모두 곱게 자란 귀족 아니냐”며 “민생행보가 식상하다고 하지만 그걸 잘못하면 조롱거리가 된다”며 반 전 사무총장의 에비앙 생수, 황 전 총리의 ‘갑질 주차’를 언급했다.
반 전 사무총장은 지난 대선국면에서 입국하자마자 티켓 발매기에 1만원짜리 지폐 2장을 한꺼번에 넣고, 또 생수를 마시기 위해 ‘에비앙 생수’를 고르다 급히 국내 생수로 바꾸는 등의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황 전 총리도 군부대 방문 당시 오른쪽에 밥을, 왼쪽에 국을 담아 ‘역시 미필’이라는 조롱을 받았고 KTX를 타기 위해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타고 간 것 또한 논란이 됐다.
황 전 총리도 이런 지적을 모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몇 개월째 여지를 남기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친박으로 꼽히는 한 중진의원 보좌관은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이 문제다. 반기문이나 황교안이나 주변에 다 빨아먹으려는 사람밖에 없어 보인다”며 “한국당에서도 황교안 언급하는 사람들 면면을 봐라. 다 자기 잇속 챙기려는 속내다”라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황 전 총리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이는 유기준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특히 오 전 시장은 지난 대선국면에서 반기문 선거대책본부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오 전 시장은 최근 한국당에 입당하면서 황 전 총리를 향해 “보수 단일대오에 함께하자”고 말했다.
여러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유 의원은 황 전 대표를 당으로 끌어오면서 자신은 원내대표직을 맡고 싶어한다. 오 전 시장은 오는 2월 말 혹은 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자신이 당대표로 출마하고 황 전 총리를 대선후보로 세우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황 전 대표가 대선은 물론이고 전대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황 전 총리가 반 전 사무총장처럼 인기나 주변 사람들의 ‘추대’만 보고 현실정치에 발을 들일 경우, 제2의 반기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대선 당시 반 전 사무총장은 가짜뉴스 때문에 불출마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보수의 소모품이 될 것 같다는 회의감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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