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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이야기](9)킹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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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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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이 2011년 5월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아산공장에서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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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1963년)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보다 백인 온건파들의 미온적인 태도가 인종차별 철폐의 더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백인 온건파들이 인종차별 문제에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흑인들이 직접행동을 통해 권리를 찾을 기회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킹은 온몸으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이 왜 직접적 폭력보다 더 참기 힘든지를 흑인들의 고통을 통해 생생히 설명한다. “인종차별이라는 뼈아픈 일을 겪어 보지 못한 분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잔인한 군중들이 당신의 부모와 형제 자매에게 마음대로 린치를 가하고, 당신이 밤이고 낮이고 흑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앞날에 아무런 기대를 갖지 못한 채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기다리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킹에 따르면 백인사회의 깨진 약속 때문에 직접 행동에 나선 흑인 시위대들을 향해 백인 지도자들이 강조하는 법과 질서는 정의가 아닌 현상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킹은 이 같은 시각에서 “백인 온건파들은 ‘정의가 살아있는 평화’보다 ‘긴장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원한다”고 비판한다. 백인 온건파들에 대한 킹의 실망은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비정규직 혹은 강성노조라는 낙인이 찍힌 채 계속된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수많은 한국 노동자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말하면서 도급이나 파견, 기간제, 단시간 노동자 등 비정규직의 보호 강화 입법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조합원 2명이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에 고용승계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 오른 지 6일로 390일째다.

남재영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은 “파인텍 노동자들의 문제는 굴뚝 1년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가의 사고방식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존엄성이 충돌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4년과 2010년 각각 노동부와 대법원이 완성차 공장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음에도 여전히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부와 여당이 현대차와 연봉 3500만원짜리 광주형 일자리 협상 타결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약 없는 ‘희망고문’을 이어가고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아산지회 조합원들은 지난달 22일 아산공장에서 일어난 임원 폭행사건 이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린 지난 8년보다 더 악몽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사측의 온갖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단 한 줄의 기사도 쓰지 않은 친재벌 언론들은 정확한 사건 경위도 파악하기 전 ‘법 위에 군림하는 노조’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들 언론은 그동안 유성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임원이 어떻게 해서 조합원들이 분노했는지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2011년 금속노조 유성지회의 파업이 임금 인상보다는 심야에 잠 좀 자고 일하자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에서 시작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유성지회가 과반수 노조로서 주간 연속 2교대제를 통한 심야노동 폐지를 관철할 경우 다른 하청업체에까지 미칠 영향을 의식해 원청인 현대차가 노조 파괴에 나선 사실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와 유성기업 임원들이 노조 파괴를 공모하는 과정에 일부 언론사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들 언론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노동부와 검찰이 사측의 노조 파괴 범죄 증거를 확보하고도 묵인하는 사이 조합원 수백명이 징계와 해고를 당하고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친재벌 언론들에 이 같은 사정은 의미가 없었다. 조합원들이 왜 분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임원을 폭행한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경향신문

미국 민권운동가 마틴 루스 킹


미국 민권운동가 킹, 법·질서 앞세운 백인 온건파 미온 태도 질타

유성기업은 교섭 않고 정부·여당 방치…언론은 폭력 부각 표피적

비정규직 보호 강화 입법 대답 없으니 고통 감수 고공농성·파업…


킹은 <버밍행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흑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순히 질서를 위태롭게 만든 시위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백인 교계 지도자들에게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여러분은 버밍햄에서 일어난 시위를 공개 규탄하면서도 시위를 불러일으킨 원인에 대해서는 같은 수준의 관심과 우려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버밍햄에서 계속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백인의 권력구조가 흑인 사회로 하여금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은 더욱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킹은 대화와 협상을 거부한 채 무조건 직접행동만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킹은 부당행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 후 대화와 협상을 시도해보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직접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지만 그전에 어떤 폭력과 모멸도 참아낼 수 있는 ‘자기 정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킹이 1963년 8월 워싱턴에서 수만명의 시위 군중들을 향해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통해 강조한 것도 어떤 과정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기 정화에 대한 훈련이다.

“비통과 증오의 잔에서 흘러내린 물로써 자유를 향한 우리의 갈증을 풀려고 하지 맙시다. 우리는 품위와 절제의 고귀한 수준을 유지해가면서 우리의 투쟁을 영원히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중략) 여러분 중 일부는 자유에 대한 요구가 박해의 폭풍 앞에서 부서지고 공권력의 만행이란 바람에 비틀거리는 고통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의미있는 고통에 익숙해진 베테랑들이 되었습니다.”

킹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성지회 조합원들의 경우 아산공장에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공권력과 사측의 가혹한 탄압에도 비통과 증오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은 ‘자기 정화’의 베테랑들이었다.

“격렬했던 2011년 직장폐쇄에 맞선 투쟁, 과반수 조합원을 잃어 교섭권을 빼앗긴 2012~2013년, 과반수 노조 지위를 되찾은 후에도 계속되는 회사의 교섭 불응. 결국 2016년 3월 쌀쌀했던 이른 봄 한광호 열사는 세상과 등졌다. 긴 시간 자행됐던 회사의 가학적 노무관리가 한광호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 죽음이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직감은 동료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며 전면파업에 나섰고 다시금 유성기업 노조 파괴를 세상에 알리는 투쟁을 벌였다”(김성민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사무장)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폭행사건에 휘말린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8년간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기 위해 기울여온 끊임없는 ‘자기 정화’ 노력이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유성지회의 지난 8년간 고공농성, 오체투지, 한광호 열사 상여 행진 투쟁은 킹이 <버밍행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언급한 비폭력 저항과 건설적 긴장의 연속이었다.

“(백인 온건파 지도자들은) 혹시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직접행동인가. 도대체 왜 연좌농성, 가두행진과 같은 일을 벌이느냐. 협상을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 아닌가. 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직접행동에 나서는 것은 바로 협상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어떤 이슈를 극적으로 표출함으로써 건설적 긴장을 조성하고 더 이상 그것이 무시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아산공장에서 충돌이 빚어지기까지 조합원들이 사측에 요구한 것은 과반수 노조로서 정당한 지위 인정과 단체교섭을 통해 지난 8년간 밀린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었다. 아산공장 사건으로 중단된 45일간의 서울사무소 점거 역시 사측의 성실한 교섭을 이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친재벌 언론들은 이들이 왜 임금 삭감, 징계, 해고의 부담을 안고 길거리 투쟁을 선택했는지 이해하기보다 법과 질서만을 강조할 뿐이었다.

킹은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백인 교계 지도자에게 정의로운 법과 그렇지 않은 법을 설명하며 흑인들이 직접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을 설명한다. “과거 숱하게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 희망은 깨져버렸고, 미국 전체의 양심 앞에 우리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 자신의 신체를 내어놓는 직접행동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백인 온건파들은) 법을 위반하려는 태도에 상당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행한 모든 일이 합법적인 것이었고 헝가리에서 자유투사들이 했던 모든 일은 불법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킹의 경험에서 보자면 유성기업 폭력사태의 경우 지난 8월 노동부 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에도 노조와의 성실한 교섭과 대화를 외면한 유성기업과 이를 방치한 정부·여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이 점에서 유성지회 조합원들의 절망감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폭행에 대한 유감과 경찰의 소극적 대응만을 질타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킹의 표현을 빌리자면 ‘얄팍한 백인 온건파’일 뿐이다.

도성대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은 “지난 8년 동안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던 사람들이 1~2분의 폭행을 경천동지할 일처럼 얘기한다”며 “이재갑 노동부 장관과 이해찬 대표에게도 수차례 사태를 해결해달라고 질의서를 보내고 면담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했다.

킹이 백인 교계 지도자를 비판하기 위해 감옥에서 신문지 여백을 이용해 작성한 <버밍행 감옥으로부터의 편지>는 1963년 당시 뉴욕타임스 등 언론들로부터 번번이 출판을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13년 36개 전미 교계 지도자들은 “우리들이 민권운동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며 킹의 편지에 화답하는 답장을 딸에게 보냈다. 과연 벼랑 끝에 내몰려 직접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현장이나 길거리 천막에서 작성한 편지에는 언제쯤이나 화답이 돌아올 것인가. 하지만 킹은 “시간은 절대 선한 자의 편이 아니다”라며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없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어느 한곳에서 자행되는 불의는 이 세상 다른 모든 곳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 됩니다. (중략) 여태까지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자유는 압제자들에 의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압제받는 자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중략) 오래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모든 악이 치유될 것이라는 이해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선의를 가진 사람들보다 효과적으로 시간을 사용한다는 생각을 점점 더 가지게 됩니다. 이 세대에 우리는 악인들의 증오에 찬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끔찍한 침묵에 대해서도 애통해야 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적절한 때라는 것은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국가정책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반석 위에 올려놓을 때입니다.”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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