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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국방비 깎아 복지에 쓰자고? 안보도 복지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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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정부 예산안이 발표되고 국회에서 심의를 진행하는 시기가 되면 시민사회 각계각층에서 정부 예산안에 대한 평가가 쏟아진다. 다양한 이유를 들면서 특정 분야 예산을 증액하고 다른 분야의 예산은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정부 예산 편성에 따라 진행중인 사업의 향방에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들도 국회 예산심의와 시민사회의 주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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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예산에 대한 증액 또는 삭감 요구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예산의 경우 일반적으로 삭감 여론이 더 많다. 국방비를 삭감, 복지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매년 반복된다. 국토방위에 필요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소수에 그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지난달 8일 보도자료에서 내년도 국방예산 증가율이 11년만에 최고 수준인 8.2%에 달하는 것에 대해 “적대와 대결에서 전쟁종식과 신뢰구축 및 평화체제 수립으로 급변한 한반도 안보환경에 역행한다”며 F-35A 스텔스 전투기, 패트리엇(PAC-3) 요격미사일 등 한국형 3축 체계 도입 중단, 장교단 대폭 감축 등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같은달 11일 “군의 이해를 과도하게 반영하고 타당성 없는 사업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사업이나 시급하게 요구되는 복지 예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보와 복지, 위협의 개념과 범위가 1990년대와는 달라진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전례가 한반도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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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합의에 명시된 비무장지대(DMZ) 내 일반초소(GP) 철수조치에 따라 장병들이 해당 GP에서 철수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안보가 지켜지지 않으면 복지도 없다

탈냉전 시대의 안보개념인 인간안보(human security)는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국가적 위기에 국한된 전통적 안보 개념에 국민생활안전위기를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 개념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을 안보위협으로 설정한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부터 전통적 안보 개념을 대신해 인간안보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와 교통, 교육 등 다양한 사회복지제도가 필요하다. 재난구호를 위한 행정조직도 갖춰져야 한다. 인간안보를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문제는 전통적 의미의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인간안보 개념은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을 경우 복지와 사회간접자본(SOC) 시스템은 무너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슬람국가(IS)의 테러다. IS가 중동에서 급성장했을 때, 이라크는 영토의 상당 부분을 IS에게 내주고 후퇴했다. 정부군이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고 싸울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라크 국내에서는 IS의 테러가 끊이지 않았고, 거듭된 전쟁과 정정 불안으로 사회보장제도는 무너졌으며 개인의 인권조차 유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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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특전사 대원들이 고무보트에 탑승한 채 침투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인간안보를 많이 연구한 유럽에서조차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사회에 불만을 품은 ‘외로운 늑대’의 테러, 러시아의 동진(東進) 등으로 국민의 안전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안보보다 전통적 의미의 군사력에 방점을 두고 있다. 남중국해와 우크라이나 등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대립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어떤가. 남북 화해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나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다. 핵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핵무기와 재래식 군사력을 끊임없이 증강하고 있고, 일본도 공격적인 군사전략을 추구한다. 군비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위협에 침묵하지만, 이는 엄연한 위협이자 현실이다.

핵보유국의 위협에 맞서려면 핵을 보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비핵화를 선언한 우리나라는 핵개발이 불가능하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군사력을 확충해야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한국형 3축 체계에 수조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제적 위협으로 다가온 테러 대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재난구조 지원 역량 유지도 필수다. 우리가 누리는 복지 혜택은 안전보장을 위해 존재하는 군사력에 힘입은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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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에서 철수한 장병들이 통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군에 ‘백지수표’ 주는 것은 위험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방예산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군에 ‘백지수표’를 주는 것은 위험하다. 군사력 증강의 근거인 ‘위험’과 ‘위협’의 속성 때문이다.

현대 문명이 야기한 위험의 증가를 경고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저서 <위험사회>에서 “굶주림은 채워질 수 있고 궁핍도 충족될 수 있으나, 문명의 위험은 밑빠진 독과 같은 수요를 갖고 있어 충족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위협과 위험의 속성은 무제한적인 국방비 지출로 이어진다. 미국의 경우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독일과 일본→러시아→이슬람 테러조직 등 다양한 위협이 제기됐다. 이에 대응하고자 미국은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 안보태세를 강화했으나 정부 재정 부담은 심화됐다.

국방비 증액을 추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억제 불가능한 군비 경쟁의 의미 있는 중단을 위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미국은 올해 7160억달러(약 796조9000억 원)를 썼다. 미친 짓!”이라고 밝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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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CH-47 수송헬기에서 특전사 대원들이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육군 제공


이같은 악순환은 적의 무기체계나 전략 등을 파악해 그보다 우수한 군대를 만드는 위협기반(threat based) 방식의 국방비 지출 시스템에 기인한다. 구조가 단순하지만 적의 위협이 바뀌면 대응하는 패턴을 반복해야 하는 위협기반 방식은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적보다 우위에 설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군이 기존처럼 위협이나 위험에 기초해 예산을 청구하는 관례를 묵인할 경우 ‘백지수표’를 마음대로 발행하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군과 정부, 시민사회간의 긴밀한 소통과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얼굴을 한 국방예산’이 요구되는 것이다. 군 내 엘리트들이 만든 국방예산안을 의심 없이 인정하는 대신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감사원 등 행정부 차원에서의 감시와 검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국방부는 예산의 지출과 수입 관련 정보공개를 확대하고 국회는 국방예산안 심의와 결산 심사를 내실화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는 한편 그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가 확대되면 시민사회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국방예산 관련 정책을 감시하며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쉽다. 마구잡이식 예산 지출을 방지하면서 민주주의 원칙을 군에 확립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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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F-16D 전투기가 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국방에 돈을 투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까운 일이다.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복지도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방비를 줄여 복지에 투자하자는 주장은 궁극적으로는 복지 시스템을 무너뜨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안보와 복지는 어느 한 쪽을 희생해야 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요소다. 안보는 복지를 떠받치는 기둥이며, 복지는 안보라는 기둥을 사용하는 지붕이다. 안보라는 기둥과 복지라는 이름의 지붕으로 구성된 보금자리는 국민의 생활공간이다. 하나라도 없으면 보금자리는 존재할 수 없다. 안보와 복지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안보가 복지요, 복지가 곧 안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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