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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5G시대 맞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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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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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상상이 있었다. 과학이 상상에 다리를 놓고 기술이 이를 '현실'로 만들지만, 미래는 늘 상상하는 사람에게서 시작됐다. 최근 만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미래에 살고 있었다. 몸은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 있지만 유 장관의 상상은 1년, 10년, 아니 100년 후에 있는 듯했다. 집무실 액자에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말이 적혀 있었다.

유 장관은 KT 아현지사 화재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대책 마련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24일부터 화재 진압 과정을 예의 주시하다 25일 아침 일찍 현장을 찾았고, 다음날인 26일에도 이통 3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대책마련 회의를 하는 등 후속 대책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유 장관은 "'초연결사회'가 인류의 축복인 동시에 위협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며 "특히 모든 것이 연결되는 5G 시대에 대비해 통신 안전과 보안에 더욱 만전을 기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국 중요 통신시설 915곳을 모두 점검하고, 재난 발생 시 통신 3사가 협력해 와이파이망 공유 등 공동 대응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요즘 그를 사로잡은 키워드는 단연코 '5G'다. 유 장관은 "저는 훗날 '오지장관'으로 기억되고 싶다. 대한민국에 5G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한 사람, 대중에게 과학기술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오지'를 찾아다녔던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면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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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사흘 후인 12월 1일 세계 최초로 5G 전파를 쏜다. 유 장관은 지난 2월 세계 최대 모바일전시회 MWC에서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지난 열 달간 이통통신 3사와 단말기 제조사, 장비 기업들을 두루 만나며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책적 뒷받침은 물론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같은 국제회의에 두루 참석해 세일즈와 홍보를 마다하지 않은 덕분이다.

유 장관은 인터뷰 내내 흥분한 목소리로 '5G 세계 최초 상용화'에 담긴 의미와 파급효과를 설명했다. 그는 "5G가 도입되면 속도가 20배 빨라진다. 몇 초 만에 영화를 내려받는 수준이 아니라 도시와 국가 전체 패러다임에 영향을 미치는 혁신적인 변화를 느끼게 될 것"이라며 "지금껏 보지 못했던 놀라운 미래로 가는 문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아쉬운 부분도 솔직히 털어놨다. 특히 '21세기 원유'라고 표현했던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유 장관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스마트 산업으로 거듭나려면 엄청난 데이터가 필요하고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며 "대통령도 '데이터 경제'를 천명하셨고 사회적 합의가 많이 진전되기는 했지만, 제 욕심으로는 더 빨리 가야 하는데 (데이터가 묶여 있으니) 조바심이 난다"고 말했다.

―데이터가 그렇게 중요한가.

▷스마트폰, 자동차, TV 등이 구동되는 운영체제를 보라. 81%가 구글이 만든 안드로이드 기반이고, 14~5%가 애플 iOS다. 그런데 이런 기기들이 빨아들이는 엄청난 데이터는 누가 갖는가. 구글과 애플과 아마존 소유다. 구글이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한다, 아디다스에 인공지능을 입혀서 '토킹 슈즈'를 만든다고 하는데 모든 것에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팔겠다는 것이고, 그 앞에는 전부 데이터가 있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됐다. 데이터 활용과 보호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데.

▷병원에서 임상 정보가 저장되고 쇼핑몰을 통해 개인 성향 데이터가 쌓인다. 공유경제가 확산되면 스마트카, 카셰어링, 공유숙박 등 엄청난 데이터가 쏟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주말에 전철을 타는지, 버스를 타는지, 택시를 타는지, 자가용을 타는지도 파악되고 내비게이션을 통해 나도 모르는 운전습관까지 저장된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들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유출에 대비해 법으로 보호장치를 마련하되 산업적으로 활용할 길은 열어줘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가 엄격하다 보니 우리 기업들에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리바바가 올해 광군제 때 하루 매출 34조원을 올렸다고 한다. 직구할 때 내 개인정보를 안 주고 살 수 있나. 알리페이로 결제하면서 내 금융정보를 안 주고 되나.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민감한 정보를 남의 나라 쇼핑몰에 다 주면서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면서 정부가 빠르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5G 시대가 열리면 이런 격차는 더 벌어질 텐데.

▷예전에는 'GIGO(Garbage in Garbage out)'라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쓰레기도 좋다. 뭐든 넣어라. 일단 전부 다 넣고 가치 있는 정보는 가려서 쓰겠다'로 바뀌었다. 스토리지와 통신비, 장비 가격이 엄청나게 낮아지면서 자료 처리 비용이 확 줄었다. 데이터 절대량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된 거다. 우리가 스마트 기기에 둘러싸여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가 모여 '패턴'이 나오고 서비스와 신산업이 창출된다.

―말씀하신 '초연결 시대'의 필수조건이 5G가 되겠다.

▷그렇다. 더 많이 더 빨리 빨아들인 정보들이 연결되는 전제조건이 '속도'다. 초고속·저지연으로 끊김이 없어야 하는데 이걸 할 수 있는 게 5G다. 내가 '세계 최초 상용화'를 밀어붙인 것은 단순히 먼저 개통했다는 순위 싸움을 위해서가 아니다. 가장 먼저 상용화된 곳에서 서비스와 산업이 꽃피고 시장을 선점하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고 봐라. 헬스케어,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스마트팜 등 모든 분야에서 시장을 선점한 퍼스트 무버가 대부분을 가져갈 것이다.

―일반 국민은 아직 5G 시대를 체감하기 어려운데.

▷부동산 아저씨랑 집 보러 가는 시대가 끝난다. 아바타가 나 대신 옷을 입어보고 최적의 코디를 해서 배달해준다. 사람들은 점점 더 새로운 서비스를 요구할 것이고, 기업들은 그에 맞춰 새로운 단말과 서비스를 창출할 것이다. 2026년께 5G 관련 시장은 1400조~1500조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통신 서비스가 약 400조원 될 것이고, 단말장비 시장이 340조원 정도, 여기에 연관 산업 등을 모두 합친 규모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장의 니즈는 상상에서 나온다. 하늘을 나는 차가 있으면 좋겠는데, 중국은 모든 도시를 지하화한다는데, 이런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게 과학기술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할 일은 규제나 인허가 과정에서 기업이 예측 가능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2020년까지 863억원을 투입해 자율주행차·스마트공장·스마트시티·재난안전·미디어 등 5대 분야에서 5G 융합서비스 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못하면 우리가 1등을 못하겠다는 느낌이 왔다. 동물적 감각이었던 것 같다. 포워드적 접근 방법으로는 안 되겠으니 백워드로 풀어야지. 내년 3월을 디데이로 잡고 뭐부터 해야 할지 알려줬다. 통신장비, 칩셋, 스몰셀, 주파수 경매 할당을 끝내야 하고 전체 글로벌 표준을 잡아야 하고 이런 계획을 제시했다. 제조사를 다 만나봤는데 불가능하다고 하더니 내년부터 5G 스마트폰 단말기가 출시된다고 한다. 예측 가능한 정책 방향을 보여주면 기업들은 알아서 맞춘다. 지금 5G 서비스가 안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걱정 안 한다. 기업들은 조용히 다 준비하고 있다.

―국민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보안과 통신비 같은 문제다.

▷5G는 4차 산업혁명의 신경망이고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므로 보안이 더욱 중요해질 것임을 잘 안다. 과기정통부는 산학연 보안 전문가로 '5G 보안 기술자문협의회'를 구성해 망 구축 과정부터 기술자문 등을 지원하고 있다. 5G 시대에는 데이터 사용량이 많아져 통신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과거 3G나 LTE 도입 사례를 보면 요금 구조 변화와 데이터 요율 인하 등으로 요금 부담을 낮춰왔다. 현재 평균 데이터 이용량이 5.7GB라는데, 3G 시대라면 한 달 요금이 1180만원 수준이다. 지금은 4만원대 요금으로 이용 가능하다.

■ "과학자 北 안데려간 것은 유엔제재 등 때문…홀대아냐"

매일경제

문재인정부 들어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과학기술혁신본부 등이 잇따라 신설되면서 과학기술에 '힘'이 실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과학자들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북한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초청된 남측 인사 중에 과학자는 포함되지 않았고,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 역시 과학자들 의견을 무시한다는 서운함이 세간에 깔린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학기술계에 갖고 있는 애정, 중요성은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며 "대통령의 주문은 임기 내에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올바르게 추진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이 느끼는 위상, 대우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지적이 있다. 과학자들 의견을 무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학자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북한 방문 때 과학자를 데려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유엔 제재를 비롯한 여러 여건 때문이다. 북한과 관계가 진전되면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할 일이 제일 많다. 준비도 돼 있다. 제재와 상관없이 자생식물, 지진, 과학기술 용어 연구 등은 바로 시작할 수 있다. 과학기술 협력이 유엔 제재와 관련이 있어 속도가 더디게 느껴질 뿐이다. 관련 부처가 준비하고 있고 남북 상황 개선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도 늘었다. 내년에는 20조5000억원이 투자된다. 1%대에서 3.7%로 인상됐다.

―28일 발사되는 누리호 엔진 시험 발사체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엔진 시험 발사를 굳이 공개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엔진 시험 발사지만 한국 발사체 R&D가 왜 중요한지 알리고 싶었다. 언론에서 시험 발사인데 마치 위성을 띄우는 것처럼 홍보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받아들인다. 그런 평가가 나와도 좋다. 하지만 국민에게 누리호 엔진 시험 발사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R&D 투자는 많은데 성과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노벨 과학상 수상도 없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관심이 크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방책이 있나.

▷노벨상을 못 받았다고 해서 우리 과학기술 수준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반적으로 30·40대에 성과가 나오고 60·70대가 돼서 받는 것이 노벨상이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기초과학에 투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 있네'에 나간 적이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학관에 가서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출연연구기관 박사들과 다른 실·국장들에게도 요구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소통해달라고 말이다. '과학 대중화'에 힘쓴 장관으로 이름이 남았으면 한다. 과학은 설명을 해도 어렵다. 하지만 멀리 보면 꿈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대한민국 유일한 자원이 바로 과학기술이다. 우주 정복도 하고 핵융합도 실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 눈높이에서 과학을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을 해보고 싶다.

▶▶ 유영민 장관은…

△1951년 부산 출생 △1970년 부산 동래고 △1979년 부산대 수학과 △1979년 LG전자 입사 △1997년 LG전자 정보화담당(CIO·상무) △2004년 LG CNS 사업지원본부장(부사장) △2006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 △2010년 포스코ICT 사업총괄 겸 IT서비스 본부장 △2011년 포스코경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장급) △2016년 더불어민주당 온·오프네트워크정당추진위원장·디지털소통위원장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신찬옥 기자 / 원호섭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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