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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방송사고 막는 막내들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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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요즘 연출팀 막내가 선배 PD들을 많이 찾는다. "선배님, 1번·3번 녹취 순서가 맞나요?" "원고 다 보셨나요?" "지금 인터뷰 자막 이상하죠?"…. 필자가 '막내 시집살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묻고 또 묻는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엽고 또 한편으론 든든하다. 모르는 만큼 선배에게 물어서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막내 덕분에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방송 일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딱히 교본이란 것이 없었다. 실력은 선배들의 노하우를 습득하는 데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속칭 '방송 무식자'였던 필자도 막내 시절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처음 생방송 진행을 배울 때는 말로만 들어선 도대체 무슨 얘긴지 감이 안 왔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선배의 콜(스태프에게 내리는 명령어) 소리를 녹음해 외국어 테이프처럼 듣고 다녔다. 또 큐시트를 프린트해 집으로 가져가서 미리 녹화해놓은 뉴스를 틀어놓고 가상 진행도 해봤다. 몇 번이고 연습을 했어도 막상 생방송에 투입됐을 땐 벌벌 떨었다.

자막을 뽑을 때도 난관이 있었다. 뉴스 자막은 13~15자 내외로 일목요연하게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문장을 함축적으로 다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유행가 가사도, 소설 구절도 모두 13자로 줄이는 연습을 했다. 한창 연습할 때는 음식점 메뉴 설명까지 글자 수를 줄여보다가 친구에게 타박을 듣기도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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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돌이켜보니 실력이 한참 모자라던 그 시절에 오히려 방송 사고가 적었다. 언제나 내가 한 일을 스스로 의심하고 노심초사하며 확인 또 확인했기 때문이다. 도리어 경력이 쌓이면서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방심한 순간, 반드시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초심을 잃은 뼈아픈 대가였다.

이럴 땐 막내들이 동동거리며 물어오는 질문이 약이 된다. 선배들이 대충 넘어가려던 것도 막내의 질문을 받으면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때로는 막내 덕분에 큰 방송사고 위험을 사전에 감지해낼 때도 있다. 물론 아직은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아슬아슬 위태로워 보이지만 막내들의 초심과 열정이 한편으론 부러운 이유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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