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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재산분할청구원의 사전포기는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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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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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85]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당신 위해 살겠다고 큰소리 치며 결혼했건만, 살면서 부부 싸움이 없으랴? 늦은 밤 술 취한 몸 비틀거리며 현관에서 문 열어주길 간청하는 때가 없으랴?

그때마다 숱하게 "다시 한번 이런 일 있으면 재산 모두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장롱 깊숙이 감춰진 각서 속 재산포기 약정은 무효!!

이혼 사건 준비서면을 작성하며 검색한 판결문 속에서 다시 한번 이 법리가 확인됐다. 2016년 1월 28일에 선고된 재산분할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2015스451).

먼저 민법 제839조의2에 규정된 재산분할제도의 본질에서 말을 꺼낸다. "재산분할제도는 혼인 중에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실질적인 공동재산을 청산·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을 청산할 필요가 있을 때, 즉 이혼이 성립할 때 그 이혼의 효력으로서 상대방에게 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재산분할청구권이 이때 비로소 발생한다. 또 이혼 협의나 이혼심판 과정에 구체적 내용이 형성되기까지는 재산분할청구권의 범위 및 내용이 불명확하고 불확정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권리가 발생했다고 할 수도 없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았고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권리를 미리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따라서 "협의 또는 심판에 의하여 구체화되지 않은 재산분할청구권을 혼인이 해소되기 전에 미리 포기하는 것은 그 성질상 허용되지 아니한다."

대법원은 여기까지 재산분할청구권에 관한 법리를 설시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고 있다. "아직 이혼하지 않은 당사자가 장차 협의상 이혼할 것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이를 전제로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하는 서면을 작성한 경우,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된 공동재산 전부를 청산.분배하려는 의도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액, 이에 대한 쌍방의 기여도와 재산분할 방법 등에 관하여 협의한 결과 부부 일방이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성질상 허용되지 아니하는 '재산분할청구권의 사전포기'에 불과할 뿐이므로 쉽사리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로서의 '포기약정'이라고 보아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아직 이혼하지 않은 부부가 협의 이혼을 전제로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하는 서면을 작성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그 포기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혼 합의 과정에 쌍방 협력으로 형성된 재산액이나 쌍방의 기여도, 분할방법 등에 관하여 진지한 논의 없이 청구인이 일방적으로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하더라도 무효라는 것이니, 일시적인 부부싸움 과정에 "다시 술 먹으면 재산 모두를 포기한다"는 각서는 말할 것도 없는 것 아니랴? 장롱 깊숙한 곳에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합의서니 각서니 반성문이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게 그걸까? 내 명의로 되어 있건 배우자의 명의로 되어 있건 20년 정도 지나면 명의에 상관없이 부부가 아끼고 아껴가며 살았던 역사가 녹아 있는 게 아파트 한 채, 전셋집 보증금 아니던가? 부부간의 신뢰와 믿음을 잃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고, 그런 믿음을 종이 쪼가리 한 장으로 지킬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한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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