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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단독] ‘40억 공천 헌금’ 양경숙…1억 사기 혐의로 또 피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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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권양숙 여사 등 친분 내세워 2명에게 1억원 빌려

3억원 갚겠다 약속했지만…1년 넘게 원금도 덜 갚아

피해자들 “옥살이 대가로 60억 받는단 말 믿었다”

양경숙 “돈 일부 갚았고 오히려 협박당했다”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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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억원의 공천 헌금을 받아 실형을 살았던 양경숙(57) <라디오21> 본부장이 이번에는 지인에게 1억원을 빌리고 갚지 않아 경찰 수사를 받는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양씨는 권양숙 여사 등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마시지사인 기아무개(54)씨와 그의 지인인 우아무개(52)씨에게 각각 7000만원, 3000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서울 성동경찰서와 서울 중부경찰서에 고소당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기씨와 우씨를 제외한 추가 피해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고소할 경우 사기 혐의 액수는 수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8월께였다. 서울 명동의 한 마사지 업소 직원으로 일하던 기씨는 양씨를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슬리퍼를 신고 온 양씨는 발 마사지를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씨가 양씨의 어깨를 살짝 건드려보니, 온몸이 긴장 상태인 것이 느껴졌다. 기씨는 “어떻게 이렇게 몸이 딱딱할 수가 있나. 돌로 때려도 풀리지 않을 정도”라며 “발 마사지만으론 부족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씨가 몇 번 어깨를 만져주자, 양씨는 전신 마사지를 받겠다고 했다. 1회에 21만원, 네 시간이 걸리는 서비스였다. 절반쯤 지났을까. 양씨는 자신의 몸이 굳어있는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운을 뗐다. “내가 교도소에서 몇 년 살다 나왔어.” 순간 기씨는 물었다. “혹시 사람 죽였어요?” 양씨는 “누굴 죽인 건 아니고, 정치자금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이 누명을 다 벗겠다”라고도 했다.

양씨는 기씨에게 자신을 <라디오21>이라는 매체의 PD라고 소개했다. 그는 “<라디오21>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 노사모 회원들이 모여서 만든 최초의 민간 방송”이라며 “내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자기 회사에서 후원하는 행사라며 기씨를 공연에 초대하기도 했다. 기씨는 그곳에서 양씨가 정말 방송 PD인 것을 믿게 됐다고 한다.

양씨는 “내가 30년 마사지를 받았는데 당신 손맛이 대한민국 최고”라고 말하며, 한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마사지를 받으러 왔다. 기씨가 일을 그만두자, 양씨는 명동의 한 호텔로 기씨를 데려갔다. 양씨는 그곳이 “유력 정치인의 동생이 소유한 호텔”이라며 기씨에게 그곳에 마사지 업소를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실제 지난해 9월22일 양씨가 기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면, “남대문 명동 ○○호텔 10층이 원래 마사지샵. ○○○○○○ 매장 70평.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 최소한 보증금 월세 내고 해볼 건지? 한번 보고 얘기해요”라고 적혀있다.

기씨는 양씨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해주겠다며 공천 희망자한테서 모두 40여억원을 받아 징역 3년을 살았던 사건을 ‘억울한 옥살이’라고 칭하며 그 대가로 민주당에서 60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주장했다. 기씨는 양씨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원로 정치인인 정아무개씨 등을 자주 언급하며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해 이 말을 믿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12일 양씨가 기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면, “오년간 내 옥바라지해 준 정○○ 고문님께 돈 좀 부탁하려 하니 큰 염려 말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양씨는 기씨에게 “(정○○ 고문에게) 신세 더 지면 너무 갚아야 할 것이 커져 고민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민주당에서 60억원을 받으면 이자를 많이 붙여서 갚겠다고 했다고 한다. 기씨는 이 말을 믿고 이날 바로 양씨에게 돈을 송금했다. 가게 보증금 2000만원과 카드론으로 대출받은 3000만원을 합한 금액이었다.

양씨는 돈을 받은 뒤, 기씨에게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맥을 과시했다. 지난해 10월23일 양씨는 기씨에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받은 감사장 사진을 전송했다. 사실 이 감사장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쉽게 출력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기씨의 눈에는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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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양씨는 다시 높은 이자를 쳐주겠다며 기씨에게 영화 투자비 명목의 돈을 더 요구했다. 양씨는 이른바 ‘촛불영화’를 만들 계획이라며 기씨와 기씨의 지인 우씨에게까지 손을 벌렸다. 지난해 12월1일 양씨는 기씨에게 “둘(기씨와 우씨)이 합쳐서 총 1억 하면 차용증으로 3억 써주고”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직후 양씨는 두 사람에게 올해 9월30일까지 총 3억원을 갚겠다는 차용증을 각각 써준 뒤 기씨에게 2000만원, 우씨에게 3000만원을 빌렸다. 기씨는 양씨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추가로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양씨는 돈을 받고 나서 “내가 중요한 곳에서 가져왔다”고 말하며 이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청와대 손목시계와 취임 기념우표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양씨는 기씨에게 문자메시지로 “(영화 투자금) 3억 이상은 노무현 시계까지 한 세트 (준다)”고 전했다.

기씨와 우씨는 특히 “양씨가 ‘권양숙 여사와의 친분이 두텁다’고 말해서 돈을 빌려주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우씨는 “양씨가 권양숙 여사의 비서로 일하며 돈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권양숙 여사 집에 놀러 오라는 말까지 해서 권 여사와의 친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씨는 “양씨가 권양숙 여사가 준 거라며 토마토, 마늘 등 각종 선물을 가져다 줬다”며 “만나서는 ‘권양숙’ 이름을 자주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는 이름 대신 ‘봉하’라는 단어만 썼다”고 덧붙였다.

양씨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31일 기씨에게 ‘아들 학원비가 필요하다’며 추가로 돈을 달라고 했다. 양씨는 “가능하면 보내주라. 봉하에서도 가불해준다고. 담주 갚을게요”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기씨에게 보냈다. 권양숙 여사를 만나고 있다는 의미로 ‘지금 봉하에 있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양씨는 기씨에게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이라는 글귀가 적힌 쿠션과 담요를 선물하기도 했다.

양씨는 기씨 등에게 1억원을 빌려 가고서도 계속 몇백만원씩을 추가로 요구하며 돈을 갚지 않았다. 점점 양씨에게 의심을 품은 기씨와 우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양씨는 올해 3월29일 기씨에게 ‘6·13 지방선거 때 더불어민주당 로고송 책임자를 맡게 됐으니, 이걸로 돈을 벌어서 몇 달 뒤 돈을 갚겠다’는 취지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양씨는 자신이 작업한 로고송이라며 이들에게 음원과 동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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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6·13 지방선거가 끝나도 양씨는 돈을 갚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기씨는 계속 돈을 갚아달라고 요구했지만, 양씨는 지난 7월 앞서 자주 언급한 원로 정치인 정씨와의 식사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 식사자리에 갔던 우씨는 “양씨와 정 고문이 상당히 가까워 보였다”고 했다. 정씨와의 식사자리 이후부터는 이권을 따주겠다는 감언이설이 이어졌다. 양씨는 돈을 갚아달라는 기씨에게 “(너에게 돈을 안 갚는 등) 실수하면 난 끝이다. 민주당 선거 홍보라도 따줄게”라고 메시지를 보내 달랬다. ‘2020년 선거에서 (우씨가) 정○○ 의원 밑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도 보냈다. 하지만 양씨가 원로 정치인 정씨와 친분이 두텁다는 말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정씨와 통화를 한 우씨는 “정 고문에게 확인해보니, 친분이 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정 고문이 수감자 선교활동을 하다가 양씨를 알게 됐고, 양씨 출소 이후 양씨 부탁으로 두 번 정도 식사자리를 가진 것이 전부라고 들었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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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의 거짓말이 이어지면서 기씨는 매달 카드론 이자를 내기도 벅찬 상황이 됐다. 결국 양씨가 돈을 돌려주기로 약속한 9월30일로부터 한 달 넘게 지나도 돈을 갚지 않자 기씨는 이달 2일, 우씨는 이달 13일 각각 서울 성동경찰서와 서울 중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양씨는 기씨의 고소장이 접수된 지 4일 뒤인 6일에야 두 사람에게 각각 700만원씩 입금했다. 그 뒤 <한겨레>의 취재 사실이 알려지자 양씨는 두 사람에게 각각 1300만원씩을 추가로 보냈다.

양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양씨는 “돈을 갚기로 한 날짜는 지났지만, 곧 갚을 것”이라며 “그쪽에서 총 1억을 빌려주고는 3억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내가 협박당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양씨는 권양숙 여사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권양숙 여사한테 한 번도 돈을 받은 적 없다”며 “(권양숙 여사는) 내 얼굴도 알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봉하에는 지난해 하루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갔다 온 것뿐”이라고 말했다. 기씨에게 선물한 토마토, 마늘 등도 “봉하가 아니라 남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 60억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기씨 등에게)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정치인과 친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기씨에게 ‘오년간 내 옥바라지를 해줬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던 원로 정치인 정씨에 대해서는 “친분이 있다고 말 못 한다”며 “내가 불쌍하니까 그분이 밥 한 번 사 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내가 언급한 사람 중에는)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로고송 작업에 대해서는 “로고송 작업을 위해 ‘서울에서 평양까지’, ‘우리의 소원’, ‘부산갈매기’ 등 7곡을 완전히 독점해 작업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바람에 후보들이 내가 작업한 로고송 ‘서울에서 평양까지’와 ‘우리의 소원’ 등을 쓰려고 했다가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투자와 관련해서는 “주투자사와 배급사가 정해지지 않아서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 내용은 기씨에게도 알렸다”고 말했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돈을 바로 돌려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기씨가) 언니를 믿고 기다린다고 해서 (나중에 갚으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양씨가 이런 방식으로 주변에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사례가 더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양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우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최근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양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며 “(지난 7월 원로 정치인 정씨와의) 식사자리에 함께 나온 사람의 지인이 지난 5월 양씨에게 1억1000만원을 빌려줬지만 되돌려 받지 못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양씨는 “로고송 작업을 하려고 돈을 빌렸다가 16일 3000만원을 갚았다“며 “11월 말에 더 갚을 것이고 12월까지는 기씨 등의 돈을 포함해 모두 빚을 청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씨의 한 지인은 <한겨레>에 “양씨가 최근 대북사업을 한다며 투자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전했다.

양씨는 지난 17일 김포공항에서 출국해 현재 중국 선양에 머물고 있다. 양씨는 18일 오전 11시께 선양에서 기씨에게 “○○아 참 할 말 없어. 다 내 거짓말이고 사기다”라며 “(권양숙 여사와 원로 정치인 등) 그들과는 전혀 관계 없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앞서 양씨는 2012년 4·11 총선 때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 희망자들로부터 40여억원의 돈을 받은 혐의(공직선거법 등 위반)와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또 2009년 9월 건강식품 판매업자한테 자신이 <문화방송>(MBC)과 다이어트 경연대회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계약한 것처럼 속여 방송 투자금 명목으로 3억6000만원을 받아 챙긴 사기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글·사진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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