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CIA, 카슈끄지 살해는 왕세자 지시 결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무함마드 빈 살만<사진> 사우디 왕세자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CIA의 이 같은 결론은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피살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온 사우디 정부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우디 검찰은 전날 이번 사건의 총책임자로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이자 사우디 정보기관의 2인자인 아흐마드 알 아시리를 지목했다.

WP는 CIA가 빈 살만 왕세자의 동생인 칼리드 빈 살만 미국 워싱턴 주재 사우디 대사가 카슈끄지와 나눈 대화 등을 종합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빈 살만 대사가 카슈끄지가 살해당하기 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을 보장할테니 걱정 말고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가서 결혼 관련 서류를 받으라’고 했는데, 이 통화가 빈 살만 왕세자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빈 살만 대사가 카슈끄지 살해 계획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카슈끄지는 지난달 2일 터키 여성과 결혼을 앞두고 관련 서류를 받기 위해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미 정보당국은 카슈끄지가 실종된 후에야 과거 도청 기록을 뒤져 빈 살만 대사와 카슈끄지의 통화 내용을 찾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소식통은 WP에 "카슈끄지는 미 정보당국의 주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며 "그가 버지니아주(州)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국은 그를 미국인으로 간주하고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CIA는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빈 살만 왕세자가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적게 보고 있다고 한다. 사우디 내 그의 권력은 여전히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장차 사우디 국왕이 될 것이란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WP에 "빈 살만 왕세자는 잔혹하고 오만하지만 훌륭한 테크노크라트(전문 관료)"라며 "세상에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주미 사우디 대사관은 WP의 보도 직후 성명을 통해 CIA의 조사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파티마 바에셴 주미 사우디 대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대사관 측과 카슈끄지는 터키와 관련된 어떤 것도 논의한 적 없다"며 "WP가 보도한 CIA의 조사 내용은 거짓이다. CIA는 이런 추측에 대한 기본적인 근거없이 여러 가설만 내놓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CIA는 논평을 거부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라는 정황이 제시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카슈끄지 암살조 중 한명인 마헤르 압둘 아지즈 무트레브가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인 사우디 알 카타니에게 "당신의 보스에게 전하라. 임무는 완료됐다"고 말하는 통화 내용을 소개했다. 미 정보당국은 무트레브가 말한 보스가 빈 살만 왕세자를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무트레브는 빈 살만 왕세자의 경호 책임자로, 빈 살만 왕세자와 수 차례 함께 여행한 측근 중 하나다. 알 카타니는 지난 15일 미 재무부가 카슈끄지 피살과 관련해 단행한 제재 대상이다. 무트레브의 통화 내용이 보도되자 사우디 정부는 성명을 내고 "터키 수사당국으로부터 녹음 파일을 받아 들어봤지만 ‘당신의 보스에게 말하라’는 내용은 없었다"며 "빈 살만 왕세자는 카슈끄지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지난달 사건 조사를 위해 터키를 방문한 지나 해스펠 미 CIA국장은 카슈끄지가 살해될 당시 상황이 담긴 녹음 파일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파일은 터키 당국이 카슈끄지의 아이폰과 아이클라우드 계정에서 입수한 것으로, 카슈끄지는 총영사관에 들어가기 전 약혼자에게 아이폰을 넘겨주고 자신이 차고 있던 애플워치의 녹음 기능을 켜뒀다고 한다.

[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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