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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여전사로 다시 태어난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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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주&] <미쓰백> 배우 한지민

두 여성이 서로 기대며 상처 감내

여성 관객들에게 용기 준 영화

“내 눈동자는 도화지 같아서 좋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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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힘은 강했다. 자신들을 ‘슈니’(서울여대 영문 철자의 약자인 ‘swu’에서 따온 말-편집자)라고 부르는 서울여대 학생들이 학교 선배인 배우 한지민을 응원하기 위해 그녀가 출연한 영화 <미쓰백>의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 관객 18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상영관을 대관해 영화를 본 뒤 ‘#슈니들이 지켜줄게’ ‘미쓰백 선배님’ 등 손수 만든 플래카드를 든 채 인증샷을 남겼다. 이들은 “<미쓰백>은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배우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인데, <미쓰백>을 통해 여성 감독이 많이 나올 수 있게 관람을 많이 해야 한다”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상영관이 점점 줄고 있다”는 이유로 단체 관람을 진행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지민은 자신의 SNS에서 후배들이 남긴 응원 메시지에 일일이 감사 댓글을 달았다. 그 덕분일까. <미쓰백>은 지난 11월3일 손익분기점인 총 관객 수 70만 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을 넘어섰다. <미쓰백>이 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여성의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나.

<미쓰백>에서 한지민이 연기한 백상아는 어린 시절 성폭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전과자가 된 여성이다. 백상아는 이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형사 장섭(이희준)에게서 과거 자신을 학대했던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듣는다. 간신히 추슬렀던 일상의 평화에 파도가 치는 어느 날, 그의 앞에 학대를 당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지은(김시아)이 나타난다. 한겨울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둘은 긴말이 없이 단단하게 결속된다. 이 영화는 사회적 편견, 부실하고 무책임한 사회 안전망, 아동학대 가정의 복잡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민얼굴과 짙은 화장을 오가는 외양, 허스키한 목소리,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욕은 그동안 한지민에게서 볼 수 없었던 거친 에너지로 백상아가 살아온 삶의 굴곡들을 짐작하게 한다. “처음에는 날 선 느낌을 억지로 보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내 얼굴 특징 때문인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얼굴에 잘 나타나지 않더라. 머리를 탈색하고 진한 립스틱을 바른 것도 세상에 대한 방어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또 거친 삶을 살아온 전사를 표현하기 위해 피부를 거칠게 표현하고, 잡티와 다크서클을 만들어냈다”는 게 한지민의 설명이다. 여러 드라마에서 대체로 예쁘고 씩씩한 캔디형 주인공을 맡아온 사실을 떠올려보면 백상아는 한지민에게 파격적인 얼굴이다. 어쩌면 백상아와 지은, 사회적 약자인 두 여성이 서로에게 기대며 처절한 상처를 감내하는 모습이 많은 여성 관객에게 용기와 연대의 힘을 갖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올인>(2003)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데뷔한 한지민은 <청연>(2005) <해부학 교실>(2007)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플랜맨>(2013) <역린>(2014) <밀정>(2016) 등 많은 영화와 <경성 스캔들>(2007)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2011) 등 여러 드라마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일제강점기에 드물게 여류 비행사로서 선배인 박경원(장진영)을 동경했던 이정희(<청연>)나 품위 있고 단아한 경성의 고전적 신여성인 나여경(<경성 스캔들>)은 올곧고 씩씩하다. 조선 최고의 거상인 한객주(<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는 고혹적이고 강렬한 모습이었고, 의열단의 여성 독립투사 연계순(<밀정>)은 묵직하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데뷔 초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메이크업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내 눈동자는 그 위에 뭘 입혀도 또 다른 색깔을 내는 도화지 같아서 좋다”고 말했듯이, 한지민은 지난 15년 동안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며 여러 색깔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또 사회사업학과를 전공한 이답게 그는 현충일에 추모사를 낭독했고 결식 아동 기부 캠페인, 명예소방관 등 사회 참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배우로 인정받는 건 더더욱 쉽지 않다. <미쓰백>에서 한지민이 보여준 얼굴은 스타이면서도 배우로 인정받을 만하다. 한지민의 다음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사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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