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사진)'은 인간이 관용의 귀를 닫고 연민의 눈을 감고 사랑의 언어에 인색할 때 일어나는 비극의 한 사례입니다. 무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년 샘이 학교에서 집단 폭행당해 목숨을 잃습니다. 오열하며 아이 어머니가 외칩니다. "샘은 당신 성(姓) 때문에 죽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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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슬람교도 칸입니다. 힌두교도 모자(母子)가 칸과 새 가정을 이루면서 아버지 성을 따른 샘이 증오 범죄에 희생된 겁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건 인류의 인간성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믿는 칸은 대통령을 만나 이렇게 외치겠다고 결심합니다. '제 이름은 칸입니다. 저는 테러범이 아닙니다(My name is Khan. I am not a terrorist).'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칸이 위험천만하게 들릴 이 발언으로 뭘 주장하려는 걸까요.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그에게 일깨운 교훈입니다. '세상엔 두 부류 사람뿐인데, 그건 좋은 행위를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이다.' 나쁜 짓을 안 해도 종교나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를 증오 범죄의 표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게 함의(含意)이지요.
천신만고 끝에 칸은 대통령 행사장에 찾아가 외칩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의 육성(肉聲)이 TV로 생중계되려는 찰나 경호원들이 그를 덮칩니다. 어눌한 말투 때문에 군중의 환호성에 뒤섞인 그의 말이 ‘나는 테러범이다(I’m a terrorist)’로 와전된 겁니다. ‘제일 좋은 종교는 관용이다(Tolerance is the best religion).’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이 글과 메시지가 일맥상통하는 칸의 호소는 과연 대통령 귀에 들어갈까요.
[이미도 외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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