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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김명수 “재판 독립 안 지키면 아무리 그럴싸한 판결문도 신뢰 못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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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구 판사 1주기 추모전

고인 말 빌려 ‘양심 판결’ 강조

경향신문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76년 서울민형사지법 영등포지원에서 일하던 고 이영구 판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된 고등학교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교내 시위를 주도해 기소된 서울대생들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했다. 수많은 판사가 유신정권 압력에 굴복해 억울한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던 때, 유일하게 이 판사만 양심에 따른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의 독립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미사여구와 그럴싸한 논리를 판결문에서 전개한들 국민은 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 1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이 판사의 1주기 추모전 개막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사진)은 이 판사의 생전 기고글 한 대목을 다시 한번 읊었다.

이 판사의 생전 글을 현재 상황과 빗대보면 법원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확인한 건 재판 독립의 붕괴다. 의혹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법원 내에서 처음으로 의혹 연루 판사 탄핵 촉구를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행정권한을 내려놓는 사법개혁을 두고 법원은 아직 갈팡질팡한다.

법원 안팎을 둘러싼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김 대법원장은 법관 독립만이 돌파구라고 여기는 듯하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 사법부는 최근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큰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며 “고인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고인이 꿈꿨던 정의롭고 독립된 법원을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법의 근본이 되는 국민의 뜻을 살피고 진지한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평소의 소신을 판결로 나타내는 것은 법관에게 가장 기본이지만,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온전히 이를 이행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며 “고인을 추모하는 것은 우리들이 그와 같은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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