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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크리틱] ‘로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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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교수·대중음악평론가


대구와 광주. 한반도 남부에 자리잡은 두 도시의 이름을 접할 때 ‘현대사의 라이벌 관계’를 떠올리지 않기는 힘들다. ‘광대(光大)고속도로’로 100분이면 오갈 수 있는 두 도시 사이의 정서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멀어 보인다.

인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두 도시에는 ‘신’(scene)이 존재해왔다. 대구의 헤비(Heavy), (아쉽게 문을 닫았지만) 광주의 네버마인드(Nevermind)는 그동안 두 도시에서 인디 음악을 키워온 전설적 클럽들이다. 소식이 충분히 북상하지 않지만 두 도시 음악인들 사이 교류도 꽤 활발해서 1년 전쯤에는 ‘광대승천’이라는 합동 공연도 열린 바 있다. 인디사이더(indiesider)들 사이의 거리는 전혀 멀지 않다.

이달 대구와 광주의 인디 음악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먼저 11월10일 서울에서는 ‘빅나인고고클럽’이라는 어젠다를 앞세운 대구의 인디 음악인들이 ‘서울상륙대작전’이라는 합동공연을 열었다. 대구에서 면면히 활동해온 여섯 팀이 일곱 시간 동안 무대에 번갈아 올라서 그동안 해온 모습 그대로를 꾸밈없이, 여유롭고, 자연스레 보여주었다. 청중이 몇몇 곡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던 순간에는 나의 무관심을 반성해야 했다. ‘100대 명반’이나 ‘불후의 명곡’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대안적 정전(正典)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11월17일 저녁에는 광주에서 ‘북이남이북’(Boogie Namie Boog)이라는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 공연에는 광주의 음악인들이 하노이에서 온 음악인들과 합동공연을 하고 심지어 협업 프로젝트까지 선을 보인다. 베트남과의 접속이 서울 따위를 거치지 않고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면 광주의 젊은 문화예술인의 최근 움직임에 몽매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오는 음악인 한 명이 전설적인 (포스트)펑크 페미니스트 밴드 고림(G? Lim)을 이끌었던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나마저도 놀랐다.

이제까지 지역, 지방, 로컬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저 단어를 쓰려는 순간 중앙, 수도, 글로벌이라는 상위의 대응어가 자동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글로벌 도시 서울’이라는 괴물 같은 존재에 현혹되지 않는 꿋꿋한 실천들을 지역, 지방, 로컬 등으로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대한 피로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이 서로 접속되어 가는 추세는 불가피하다지만, ‘어떤 것은 글로벌한 반면, 다른 것은 로컬하다’고 서열을 짓는 행위는 불가역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글로벌/로컬’의 이원론 대신 플래니터리(planetary)라는 일원론을 제안하기도 한다. ‘글로브’(globe)가 지구고 ‘플래닛’(planet)은 혹성이므로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글로벌의 ‘타자’로 로컬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다행스럽다.

주제로 돌아온다면, 로컬이 문제적이라면 글로벌도 문제적이다. 즉, 서울은 글로벌 도시고, 광주와 대구는 로컬 도시라고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않다. 모든 인간 그리고 모든 사물은 혹성의 ‘보통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 실제로 2010년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가운데 하나는 부산에 거주하는 세이수미의 음악이다. 안면을 터두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이 밴드는 요즘 외국 투어를 하느라 바쁜 ‘플래니터리 밴드’가 되었다. 신중하지 않게 말한다면, 혹시 희망은 서울이란 곳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 아닐까. 특권과 거만, 탐욕, 그리고 허울 좋은 ‘힙(hip)함’만 남아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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