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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세상읽기] 소외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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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어린이를 위한 전형적인 위인전 주인공은 아예 처음부터 위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다. 자라면서 더더욱 훌륭한 인물이 된다. 인간의 흠이 없다.

정직의 상징인 조지 워싱턴의 위인전에 없는 이야기 하나. 노예를 6개월 부리면 놓아줘야 한다는 펜실베이니아법을 피하기 위해 노예를 6개월 가까이 부리면 딴 곳으로 보냈다 다시 데려오는 편법으로 노예를 장기 소유했다. 자신의 노예 9명을 이런 식으로 번갈아 돌렸다. 도망간 노예를 잡기 위해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집요하게 추적했다. 필자는 조지 워싱턴의 상징적 활동 무대였던 필라델피아 자유공원의 전시물에서 이 이야기를 읽었다. 신선했다. 위인은 다른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 업적이 결점을 압도한 사람이라는 관점이다. 필자가 읽은 위인전 중에 이런 관점에 가장 어울리는 위인전은 앙드레 모루아가 쓴 '디즈레일리의 생애'다.

고대 건국신화에는 아예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나타난다. 가장 흔한 스토리는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처녀를 잉태시켜 아기를 낳는다. 이 과정에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 곰, 사슴, 닭, 이리 등 동물들도 등장한다. 일본은 아예 하늘의 족보를 지어내어 5대손이 땅으로 내려온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150명 넘는 집단을 통솔하기 힘들어지자 신화와 같은 허구를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허구는 '구라'의 서사적 표현이다. 신화는 일종의 인간 소외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인간의 문명은 인간 소외로부터 진화한 셈이다.

전형적 위인전과 대척점에 있는 대표적 문학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다. 그가 위대한 것은, 자신의 다면성을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기술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만큼 자기 소외로부터 자유로운 글을 쓴 예는 흔치 않다.

다비도위츠는 그의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페이스북을 디지털 허풍약이라고 말한다.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모든 젊은이들이 주말에 근사한 파티에 가지만 실제로는 집에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반면 구글 검색 기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이터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는 공개된 공간이고 하나는 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에 있다. 페이스북은 자신의 좋은 부분을 드러내는 도구이면서 자기 소외의 도구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위인으로 태어나서 더욱 위인이 되어가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사람을 그리는 전기는 어린 독자에게 동경과 함께 죄책감을 선사한다. 영향을 많이 받으면 만들어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구라 위인전을 배운 북한 어린이가 내뱉는 국왕 찬양은 소외의 끝판왕이다.

위인전에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이들은 소외를 배운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보다 만들어낸 모습으로 글을 쓰고 행동해야 한다는 무언의 교육. 어린이 백일장의 수상작들 중에 가슴에서 만들어내지 못하고 머리로 쥐어짜낸 글이 많다. 그런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으면 어린이들은 그렇게 맞춰간다. 이런 것이 몸에 배면 어른이 되어서도 내용은 없는데 멋은 있어 보이는 글을 쓴다. 신춘문예나 소설의 시작부를 보면 이런 유의 예를 자주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이타적인 행동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대개 어릴 때 주입된다. 이타적으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 이타성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본성의 소외를 부른다. 맷 리들리는 '선의 기원'에서 어린이들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가르칠 때 도그마처럼 주입할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행동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게 어린이들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한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본성을 관찰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이 방해를 덜 한다면 좀 더 합리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세상에 만연하는 소음은 우리들이 자신을 소외시킴으로써 객관적인 눈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칼럼의 문체가 조금 순화된다.

자기 소외의 꽃은 정치다. 자기 소외의 대가들이 벌이는 향연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옵투스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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