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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작고 좋은 집, 내 손으로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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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작은집 건축학교 체험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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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집을 내 손으로 짓는다! 누구라도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이야기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이 대세인 요즘에는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도 마이크로(Micro) 하우스, 타이니(Tiny) 하우스가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꿈을 현실에서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 있다. 한겨레교육이 운영하는 ‘작은집 건축학교’라는 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생활이 가능한 작은 집을 8일 동안 여럿이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완성하는 방식이다. 최근 끝난 프로그램에 함께 했던 참여자가 집을 지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해 <한겨레>에 보내왔다.


직소, 타카 총, 임팩트 드라이버, 원형 톱, 각도 절단기... 스릴러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들이 교육 시간에 쏟아진다. 공구 이름은 낯설고 공구를 잡고 있는 내 손은 남의 손처럼 어색하다. 이런 내가 과연 작은 집 짓기 전체 공정에 참여해 완성까지 할 수 있을지 시작부터 미덥지가 않다. 그것도 8일 만에 뚝딱. 한겨레교육 작은집 건축학교 첫째 날의 이런저런 잡념은 곧 시끌시끌한 현장 소리에 묻혔다.

절단기로 윙윙 섬세하게 집의 뼈대가 될 구조목을 재단하고 임팩트 드라이버를 사용해 목피스로 스르륵 부드럽게 고정해야지, 는 희망 사항일 뿐, 구조목 몇 개를 자르고 보니 같아야 할 길이가 제각각이다. 목피스는 구조목에 박히기는커녕 본분을 잊은 채 표면에 닿자마자 픽 고꾸라진다. 다행히 배운 대로 곧잘 하는 기술 좋은 동기들도 있어서 집 짓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동기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나보다 많은 연배에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그래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발을 맞추어야 한다. 끝내야 할 작업량이 만만치 않아서 어색할 새도 없다.

자른 구조목으로 집의 바닥면 목상을 만들고 임팩트 드라이버를 사용해 75mm 피스로 결합한다. 하부 OSB를 목상과 정확히 맞춰 결합하고 열반사 단열재를 부착한 다음, 뒤집어 수평을 맞춘다. 수도배관이 지나갈 곳의 치수를 재어 구조목에 홈을 내고 목상 사이에 단열재인 인슐레이션을 꼼꼼히 넣고 타카로 고정한다. 도면대로 배관의 위치를 잡은 후에 직소와 드릴, 홀스를 이용해 상부 OSB에 수량만큼 구멍을 내고 결합하면 바닥면 완성이다. 대체 이게 다 무슨 말, 하다 보니 집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첫째 날이다.

둘째 날에는 벽체를 만들어 세우고 다락의 바닥면을 지었다. 윙윙, 드르륵, 딸칵딸칵, 앙칼진 공구 소리가 종일 작업장에 울려 퍼진다. 저녁 무렵이 되자 집의 뼈대가 만들어졌다. 지붕을 올려 상량식을 하고 저녁에 수육 파티를 하는 일정이었는데, 오후에 마을에서 열리는 수수축제에 다녀오느라 작업이 조금 밀렸다. 지붕은 올리지 못하고 수육만 먹었다.

셋째 날은 외부 벽면에 투습 방수지를 두르는 작업이 이어졌다. 전날 미뤄진 지붕도 올려야 한다. 지붕의 목상 사이에 스티로폼을 넣은 후 삼목 루바로 천장을 마감하고 호이스트로 지붕을 들어 올려 결합하자 집이 자태를 드러냈다. 창호에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몰딩 시공을 하고 전기배선 기초 작업도 마쳤다. 임팩트 드라이버가 이제 제법 손에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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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직접 짓는다는 것

한겨레교육 작은집 건축학교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있다. 아침이 오면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안개가 헝클어진 속을 다독여주는 곳. 물과 산 좋은 지역에 책방 딸린 작은 출판사를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 건 이런 풍경 때문일 것이다. 참깨라든가, 수수, 검은콩 같은 지역의 수확물 소식을 그림과 글로 지어 펴내면서 지역사회와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출판사(음, 돈은 못 벌겠군). 작은집 건축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삼목 루바 시공이라도 보탤 수 있을 테니 집 짓는 비용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내 작업실을 직접 지어보리라는 두루뭉술한 생각뿐이었는데 며칠 사이에 꽤 구체적으로 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생존을 위해 서울에서 장렬히 버티는 중이지만, 지금 내 이런저런 상황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몽상에 가깝다. 그래도 한 걸음은 내디뎠으니 뭐라도 비슷한 길이 생기지 않을까.

18㎡(5.5평) 작은 집

한겨레교육 작은집 건축학교 26기 인원은 열두 명의 정원에, 14기 선배 한 명, 동네 청년 두 명이 참가하여 총 열다섯 명이다. 그중 여성은 40대 두 명, 30대와 20대가 각 한 명씩 네 명으로 지금까지 기수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한다. 귀농을 준비하며 농막이나 별채를 직접 지으려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주로 작은집 건축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연령대가 다양하다.

집 짓는 8일 동안 11㎡(3.4평)의 작은 집에 후배와 둘이 묵었다. 이전 동문들이 지은 집이다. 처음엔 퍽 작게 느껴졌는데 점차 익숙해지더니 급기야 우리가 짓고 있는 18㎡의 집이 대저택처럼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 생겼다. 작은 집에서 지내며 마음이 단순하고 간소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18㎡ 작은 집의 다락방은 두 명이 충분히 잘 수 있는 크기이고 양쪽 벽에 가로로 긴 창문을 내어 답답하지 않고 아늑하다. 여름에는 맞바람이 불어 시원할 것이다. 아래층에는 주방과 옷장, 화장실이 있어서 살림집으로도 가능하다. 작은 집의 효율성을 예를 들며, 멀리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14㎡(4.2)평 오두막이나 르코르뷔지에가 지낸 13㎡(4평) 별장을 꺼내지 않아도 될 거 같다. 한겨레 작은집 건축학교의 문건호, 손정현 작가가 거주하는 집도 11㎡(3.4평)이기 때문이다.

두 작가가 일군 한겨레 작은집 건축학교가 어느새 3년이 되었다고 한다. 11㎡의 작은 집부터 지금의 18㎡까지, 다녀간 작은집 건축학교 동문도 이백여 명을 훌쩍 넘었다. 20㎡(6평) 이하인 공간은 농막의 개념으로 건축허가가 필요 없는 신고제이다. 규제나 절차가 번거롭지 않으니 집 짓기 접근성이 좋다. 완공된 집은 크레인이나 지게차를 이용해 트럭에 실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 설치할 수 있다. 작은집 건축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집 짓는 동문의 소식이 들려오면 현장으로 가서 품앗이하기도 한다. 작은 집으로 맺은 인연이 또 다른 집으로 이어진다. 꿈과 꿈이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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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이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일생을 통해 이룰 꿈이 집인 사회라니 씁쓸하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값이 억억거리며 오르는 소식에 담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은,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을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으니까. 같아지려고 모두 한 길로만 가다 보니 경쟁이 심해지고 포화상태가 되어 결국 곳곳이 터진다. 모호하지만 샛길로도 걸어보고 여러 길을 지나다 보면 서로 사는 모습도 다양하고 풍성해진다. 그러니 집은 자신에게 맞도록 간소하게 꾸리고, 남과 같아지거나 더 큰 집을 갖기 위해 쏟는 에너지를 다른 꿈을 짓는 데 투자하며,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은집 건축학교에 집을 지으러 온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사는 곳도 살아온 시간도 다르지만, 집과 땅을 부동산으로 여기기보다는, 꿈을 짓고 농사를 짓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 그래서 작은 집 짓기를 끝낸 감회로 행복을 서슴없이 말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나 보다.

우리 26기에는 강촌이나 섬진강 주변에 직접 집을 짓고 싶다는 50대도 있고 집 짓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기특한 20대도 있다. 경북 영양에서 잡곡 농사를 하는 분은 농막을 직접 짓고 싶다고 했는데, 작은 집을 지을 땅을 구하지 못한 동기에게 선뜻 자신의 땅을 내어주겠노라고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8일은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머리 맞대고 집을 지어 본 사람들 사이에선 그렇게 마법을 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좋은 집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개인 생활이 우선시되는 아파트가 좋은 사람도 있고 도서관, 학교, 카페 같은, 집 근처의 환경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누구와 사는지가 집의 크기나 구조보다 중요한 사람도 있고, 창문이 어느 위치에 어떤 모양으로 어떤 풍경을 담고 있는지에 따라 좋은 집이 되기도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집에 살든, 남이 보기에 그럴듯한 집이 아니라 내가 살기에 편한 집이 좋은 집이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결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오래되고 낡아도 따뜻한 숨결을 품은 집. 더구나 자신에게 맞는 쓰임에 따라 구조와 소재를 달리하며 직접 지은 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집이 아닐는지. 작은집 건축학교에서 지은 5.5평 집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10년쯤 지난 후에는 이 집들이 어떤 이야기와 결을 갖게 될지 기대된다.

모든 날이 힘들고 좋았다

전기공사를 하는 넷째 날은 콘센트에 빨강, 파랑, 초록 전선을 끼우는 연습부터 했다. 전기연결은 설명을 들을수록 정신이 흐릿해진다. 실전만이 답을 얻을 수 있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 알려주고 익혀가면서 분전함을 설치하고 전선을 CD 관에 넣어 연결하여 내부와 외부의 등을 모두 설치했다. 점등 테스트를 하는 순간이다(불이 진짜 들어올까?). 자, 스위치 누르세요(모두 숨을 죽인다). 찰칵! 우와! 집안에 환한 빛이 들어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뼉을 치고 함성이 터져 나온다. 지쳐있던 눈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남은 사흘 동안, 벽체 시멘트 사이딩, 드라이비트, 지붕 강판, 내부 삼목 루바, 바닥 필름 난방 시공 등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주방 석고보드, 강마루, 화장실 시공, 계단 서랍장, 옷장 제작, 현관문, 방화문, 온수기, 싱크대 설치, 주방 타일 부착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리콘 마감. 와, 이 열거하기도 숨찬 과정을 모두 마쳤으니 축하가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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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동안의 작은 집 짓기가 끝났다. 스릴러 같던 공구(특히 임팩트 드라이버)를 연인처럼 가까이 두게 되고 귀를 찌르던 작업장의 공구 소리가 오케스트라 교향곡처럼 들릴 때쯤에 거짓말처럼, 꿈처럼.

서울의 집으로 돌아오니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다. 지금껏 이토록 몸을 많이 쓰며 일한 적이 있던가. 온몸이 욱신욱신해 끙끙대며 잠들던 고된 날들이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는 힐링 캠프 같은 시간이었다. 육체노동이 잡념을 놓게 하고, 함께 짓는 작은 집이 근사한 자태를 드러내며 차근차근 완성되는 모습을 매일 보는데, 누군들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여행 후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이번 여행은 집이 남았다. 대박!

어떤 단어나 용어를 새롭게 알게 되면 세상이 넓어지는 경우가 있다. 직소, 타카, 임팩트 드라이버, 루바, 인슐레이션으로 작은집 건축학교 동문들의 세상도 18㎡쯤 넓어졌길.

부디 모든 분이 원하는 대로 좋은 집, 꼭 지으시길.

글 : 김씨씨

책 만드는 일을 한다. 이따금 여행 글을 쓰며 길 위의 이야기를 틈틈이 세상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 <봉지아, 포르투갈>과 공저인 <홍콩, 몽중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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