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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학부모들 “비교과상 수상 놓친 학생들 구제방안도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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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숙명여고 정기고사·시험문제·정답 유출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12일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 앞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전 교무부장과 쌍둥이 딸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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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와 정답을 빼내 ‘전교 1등 쌍둥이’를 만든 엇나간 부정(父情). 결국 아버지는 구속되고 직장에서도 파면당하게 됐으며, 딸들은 나란히 퇴학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을 처지가 됐다. 12일 경찰이 발표한 서울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의혹 사건의 전말은 입시를 위한 줄세우기가 낳은 한국 사회의 극적인 단면이었다.

숙명여고는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인 12일 오후 성명을 내고 “이 사건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졸업생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학교에 대한 신뢰에 상처를 드린 것에 대해 사죄한다”며 전 교무부장 ㄱ씨 자녀들의 성적 재산정과 퇴학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ㄱ씨도 파면할 것이라면서 “교육청과 협의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확정하겠다”고 했다.

숙명여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명신여학원은 지난달 30일 이사회에서 정관의 교원 직위해제·해임 사유에 ‘형사사건으로 기소’를 추가했다. 사실상 ㄱ씨를 파면하기 위한 사전절차였던 셈이다. 숙명여고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교육청이 아닌 학교 이사회가 징계를 해야 한다. 이미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8월 특별감사를 하면서 학교 측에 ㄱ씨의 중징계를 요구한 상태였다.

쌍둥이 딸은 지난 1일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학교는 교육청에 처리방안을 문의했고, 교육청은 경찰 수사 상황을 감안해 “자퇴서 처리에 신중하라”고 답변했다. 자퇴는 학교장 권한이지만, 섣불리 처리했다가 이후 범죄혐의가 드러날 경우 성적처리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학생생활규정에는 ‘부정행위를 목적으로 시험문제를 사전에 절취하거나 절취 후 누설한 학생’에게는 사회봉사·특별교육·퇴학처분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숙명여고 사태의 파장이 커진 것은 이 학교가 이른바 ‘강남 내신 명문고’인 까닭도 컸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치열한 내신 경쟁 속에서 쌍둥이의 성적 처리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학교와 경찰서 앞에서 쌍둥이 딸의 퇴학과 ‘0점 처리’를 요구하는 집회도 여러 번 열었다. 쌍둥이 딸의 성적이 0점 처리되면 등급 간 경계에 있는 학생들의 성적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만 반영된다. 학부모들은 “등수를 도난당한 2학년 학생들의 성적 재산정은 물론 미술·문학 등 비교과상 수상 기회를 도난당한 학생들의 구제방안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쌍둥이들은 지난해 7월 이후 교내대회에서 총 44개의 상을 휩쓸었다.

ㄱ씨와 쌍둥이 딸은 파면·퇴학을 면키 어렵게 됐지만 사건의 파장은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혹이 제기된 뒤 교육부는 교원과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 원칙을 발표하고, 전국 시·도 교육청과 잇달아 회의를 열어 시험 문제지·답지 ‘보안 강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 사건이 부추긴 내신 불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교 측은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한 학사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미 학교의 신뢰가 추락해 입시에서 불이익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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