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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731부대와 과학기술 총력전 체제 / 이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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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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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 3일 녹색평론사 회의실에서는 제3회 한-일 식견교류 행사가 있었다. 한국의 녹색평론사와 일본의 시민단체 ‘오다 마코토를 읽는다’의 모임이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해서 일본 측의 강연을 듣고 토론을 경청했다.

발표자는 ‘현대의료를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인 야마구치 겐이치로(의사·뇌신경외과)였으며, 발표 제목은 ‘생명과 윤리, 추궁되고 있는 과제-현대 생명과학에 대한 한·일 공통의 인식을’이었다. 이날 발표는 생명과학 기술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야마구치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사례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첫째, 관동군 731부대(1939~1945)와 전후 일본 생명과학계의 연속성 문제. 중일전쟁 발발 직후 ‘관동군 방역급수대’라는 모호한 이름을 단 이 부대의 창설 목적은 생물·화학 병기의 개발이었다. 이 연구를 위해 731부대는 ‘마루타’로 지칭된 조선인·중국인·몽골인·러시아인 등 3천여명에게 반인륜적인 각종 생체실험을 감행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문제는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의학자와 과학자들의 전쟁 책임이 전후 연합군 총사령부(GHQ)에 의해 전원 면죄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이들이 일본의 각 대학과 연구소에서 학부장, 학장, 연구소장, 학술회원 등으로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른바 와다 심장이식 수술 사건의 비윤리성. 1968년 8월8일 일본 최초의 심장이식 수술이 삿포로 의과대학에서 흉부외과 교수인 와다 주로에 의해 이루어졌다. 문제는 수영 중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실려온 야마구치 요시마사(21)가 뇌사상태에조차 이르지 않았는데도, 그의 심장을 꺼내 심장판막증으로 입원해 있던 미야자키 노부오(18)에게 이식했다는 점에 있다. 미야자키는 수술 후 83일 만에 사망하고, 와다 교수는 살인죄로 고발되었지만 불기소되었고, 이후에는 오히려 일본 최초의 심장이식 공로자로 고평되어 도쿄여자의대 교수로 영전되었다.

셋째, 혈우병 환자의 에이즈 감염 사건을 통해 본 생체실험의 유산. 731부대장이었던 기타노 마사지와 전직 부대원들은 전쟁기 생체실험 등을 통해 축적된 연구를 기반으로 전후 일본 혈액은행(이후 일본 ‘녹십자’로 변경)을 창설해 혈액사업에 진출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 이들은 미국에서 수입한 혈장을 원료로 만든 비가열 혈액 제제를 혈우병 환자에게 주사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1800여명의 혈우병 환자가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집단 감염되고, 그 가운데 2할 가까운 환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제는 이들이 가열 혈액 제제를 쓰면 이러한 에이즈 집단감염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사태에 가담했던 의사와 의학자들은 이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러한 발표를 듣고 내가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과학기술은 국가와 시장의 총력전에 적극 협력했던 책임이 있지만, 그것은 극복되지 않았다. 둘째,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비판적 과학기술인과 시민들의 연대, 이를 통한 정책의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셋째, 과학기술이 인간과 자연,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실천이 필요하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무엇보다도 ‘전문가주의’의 지배 아래, 시민 모두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는 과학기술 정책들이 정작 ‘시민 배제’를 통해 강행된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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