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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고시원 화재, ‘창문값’ 월 4만원이 삶과 죽음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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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7명 숨진 종로 고시원 화재, 피해 왜 컸나

좁은 복도에 탈출구는 하나뿐…그나마 불길에 막혀

35년 된 건물 스프링클러 없어…화재 감지기도 작동 안 해

생존자들 창문으로 뛰어내리거나 완강기 타고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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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새벽 화재로 최소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ㄱ고시원은 지어진 지 35년된 3층 건물 가운데 2층에 고시원 객실 24개, 3층에 고시원 객실 29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2층 객실에는 입실자가 꽉 차 있었고, 3층에는 26개 방에 입실자가 거주했다. 사망자 7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은 34살이고, 다른 6명은 모두 50대 이상인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79살이었다. 사망자 중에는 일본인 남성(53)도 1명 포함됐다.

1983년 지어진 ㄱ고시원 건물은 3층 연면적 614.3㎟(185.8평)로 1층이 음식점, 2~3층이 고시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옥상에 있는 옥탑방 1개도 고시원으로 사용됐다. 각 층은 140.93㎟(42.6평)인데, 이안에 3.3㎟(1평) 정도 되는 방이 2층에 24개, 3층에 29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복도는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폭이었다. 이런 객실에 대부분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40~60대들이 월세 27만~38만원 정도를 내고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일상에 시달리며 살았던 듯 생존자 여러 명에게 사망자들 신원에 관해 물어봤지만 일제히 “서로 전혀 모른다. 얼굴밖에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 따로 사는 가족들이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번 화재에선 특히 불이 최초로 발생한 301호 바로 옆에 유일한 출입구인 계단이 있어서 불길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이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생존자들은 3층 창문으로 뛰어내리거나 배관 혹은 완강기 등을 타고 내려와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이 월세 4만원 차이 나는 창문 있는 방과 없는 방 사이에서 갈렸다. 3층 327호에서 탈출했다는 일용직 노동자 이춘산(64)씨는 “월 32만원을 내고 창문 있는 방에 거주하고 있는데 창문 열고 에어컨 배관을 타고 내려왔다”며 “창문 없는 방은 월 28만원 정도로 안다. 창문이 있어서 살았다. 창문 없으면 죽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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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된 낡은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없었던데다, 경보용 화재 감지기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2층 205호 살다가 탈출한 박아무개(56)씨는 “고시원 벽이나 커튼 같은 것들에 방염 처리가 안 되어 있는 싸구려를 쓰니까 화재에 취약했던 것 같다”며 “화재 감지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3층 326호에 거주하다 불이 난 뒤 뛰어내렸다는 한 60대 남성도 “화재 경보음은 들리지 않았다. 방에서 감기약을 먹고 깊이 자고 있었는데, 벽을 쾅쾅 두드리는 바람에 깼다”고 말했다. 권혁민 종로소방서장도 이날 현장 화재 브리핑에서 “건물이 노후화했고 스프링클러는 없었다”며 “비상벨과 경보용 화재 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감지기가 작동했는지는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윤민규 종로소방서 지휘팀장은 이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009년부터 다중이용업소 특별법에 따라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이 개정됐는데, 이 건물은 고시원 등록 시점이 2007년이어서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상 경보설비와 비상벨, 화재 감지기 정도의 소방시설만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ㄱ고시원처럼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는 고시원이 서울시에만 1080개(2014년 서울시 통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법이 2009년 7월8일 개정되기 이전에 설립된 고시원은 내부구조·실내장식물·안전시설 등을 새로 설치하거나 영업주가 바뀌는 경우에만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인 법의 적용을 받게끔 되어 있다. 서울소방본부 예방과가 파악하고 있는 고시원 숫자가 5840개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 고시원의 18%가량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없이 방치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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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화재 발생 건수는 최근 5년 사이 건수와 비중 모두 조금씩 늘어왔다. 소방청의 ‘최근 5년간 고시원 화재 발생 현황’을 보면, 2013년 고시원 화재 발생 건수는 43건에서, 2014년 48건, 2015년 52건 등 지속해서 늘어나다 2016년 74건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7년 47건으로 다소 줄었다. 전체 다중이용업소 화재 발생 건수 중 고시원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7.1%에서 9.3%까지 조금씩 늘었다가 2017년에 7.7%로 소폭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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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울 종로소방서는 9일 새벽 5시께 서울 종로구 관수동 ㄱ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 7명과 부상자 11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소방 당국은 애초 부상자 18명 가운데 가벼운 부상자 1명을 뺀 17명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이 가운데 7명이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는데 이들이 모두 사망했다고 밝혔다.

임재우 박윤경 이정규 이준희 장예지 전광준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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