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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문성현 "임금 가지고는 다 했다, 민노총 이젠 바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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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직격인터뷰]

“파업하라” 노조 몰아치던 ‘문전투’

사측 만나 대화·협력 나서달라 주문

노조 속성상 개혁 찬성 않하겠지만

민주노총도 진통 겪으며 변화할 것

임금 투쟁 줄어 노동운동에 변곡점

근본 해결책 대·중소기업 격차 축소

밀려나면 죽는다 불안에 투쟁 일관

노사 머리 맞대 의견차부터 좁혀야

중앙일보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여전히 투쟁적이지만 변화를 향한 진통기에 접어들었다고 확신한다“며 ’내 삶의 모든 것을 걸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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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더독’이다. 개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지금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와 경제를 뒤흔드는 양상이 꼭 이런 모습이다. 민주노총은 올 들어 세력을 불려 조합원이 80만 명을 넘어섰다. 그래봐야 2000만 명이 넘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4%에 불과하다. 이렇게 대표성도 크지 않은 민주노총이 갈 길 바쁜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모든 대화를 거부한 채 문재인 정부에 빚 독촉이라도 하는 양 행동하고 있다. 이들을 껴앉기 위해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새로운 틀을 갖추고 오는 22일 출범하기로 했지만 민주노총은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문성현(66)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전투’로 불릴 만큼 1980년대 투쟁적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노사정 대화가 어렵게 되자 얼마 전 일주일간 스마트폰을 끄고 잠적했었다. “그만둬야겠다고 숙고했지만 국민과 국가를 위해 마음을 고쳐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는 그를 만났다.



Q : 위원장 직책을 던질까 고심했다니 얼마나 고충이 많은가.

A :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위원장 위촉장을 받을 때 국민에게 던진 메시지는 투쟁을 해본 사람이 투쟁을 말릴 줄도 안다는 것이었다. 이후 1년 2개월간 국민들만 바라봤다. 국민들은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 노사가 갈등을 끝내고 합의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끝내 민주노총을 장내로 이끌지 못했다. 이 직책을 그만두는 게 책임지는 것이라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 틀 안에 넣는 게 맞지 않나 싶어 이 자리에 남아 있다.”




Q : 사회적 대화가 왜 이리 어려운가.

A : “위원장을 맡아보니 과연 우리가 사회적 대화를 할 만한 의지와 실력이 있는 나라이냐는 의심이 든다. 그럴 만한 실력과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기승전 최저임금’이었고, ‘기승전 사회적 대화’였다. 말만 앞설 뿐 대화가 없었다. 우리는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최저임금을 올렸다. 그런데 대화는 부족했다. 한쪽은 최저임금이 경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만 하고, 다른 쪽은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올리자고 맞섰다.”




Q : 더구나 소상공인 같은 자영업자의 의견은 쏙 빠지지 않았나.

A : “그래서 새로 출범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는 양대 노총, 경영자총협회·상공회의소를 넘어서 중소기업, 자영업자·청년·여성 등 그간 배제됐던 사회 구성원도 포함시키게 됐다. 비정규직의 의견도 듣게 된다.”




Q : 최저임금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A : “지난해 노사가 16.4% 올렸을 때 노사 대화가 충분하지 않았는데 올해 또다시 10.9% 인상이 결정됐다. 그러니 사용자 측에서 최저임금 때문에 못해 먹겠다고 한다. 산입범위와 인상률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말했는데 그렇게 안 했다. 그러니 계속 문제가 꼬인다. 노동시간 탄력근로제를 놓고 노동계는 죽자고 안 된다고 한다. 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경영계가 반대한다. 노사는 나만 옳은 게 아니라 서로 입장을 인정해야 한다. ”




Q :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A : “정부가 가능하면 한 테이블에 올려서 조정하게 해줘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관련된 문제를 연결해야지 왜 따로 하는지 모르겠다. 국회든 정부든 노사 양측의 얘기를 듣고 이견을 좁혀야 한다. 왜 따로 해서 욕을 먹고 있나.”




Q :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 시선은 차갑다.

A :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로부터 거의 50년,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 대투쟁으로부터 30년 세월이 지나면서 노동운동에도 변곡점에 왔다. 한 30년 노동운동 해보니 민주노총도 바뀔 것이고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임금 가지고는 다 했다. 기업의 지불능력을 보면 어느 정도 한계점에 왔다. 그러고 보니 올해 임금 갖고 파업한 데는 한 곳도 없다. 물론 비정규직은 (임금 문제가 여전히) 있지만 역사가 20~30년 된 노조들이 임금으로 파업하지 않고 있다. 투쟁한 세월이 지나니 성과가 쌓인 것 아니겠나.”




Q : 한국노총의 역할은 어떻게 보나.

A : “어려운 과정 속에서 한국노총은 대화를 해왔다. 외환위기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 현재 보면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의 DNA가 있다고 본다. 한국노총은 금융·공기업·운송업을 대표해 해방 직후에는 치열하게 투쟁했다. 오래되다 보니 싸움보다는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게 됐다고 본다. 이에 비해 민주노총은 1987년 이후에 조직되면서 그때까지 조직되지 못했던 조선·자동차·철강·교사까지 대표하게 됐다.”




Q : 조선·철강·자동차는 민주노총이 대표하는 산업군인데 벼랑 끝에 서 있다.

A :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서 재벌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 지위가 노조까지 갔다고 본다. 현장에서 노조위원장할 때 독일을 갔는데 폴크스바겐 노조 대의원은 성과급을 받아야겠다고 하자 중소 협력업체 노조 대의원이 무슨 소리냐,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같은 월급 받고 같은 일 한 것 아니냐고 싸우는 것을 봤다. 우리도 진작에 대·중소기업 노조를 한데 묶어 놓고 이런 대결 구도가 있었어야 했다.”




Q : 투쟁하는 사이 산업이 어려워졌다.

A : “조선은 물론이고 자동차도 어려워졌다. 심각하다. 부품과 중소기업이 함께 무너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10명 중 8명은 부품에 종사한다. 그러니 청년 일자리에 미래가 없고 중소기업이 어렵다.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가 됐는데 노조와 화해 협력 관계로 가고 중소기업과도 친화적으로 가야 한다. 이를 지원하려면 정부는 규제 완화를 막연히 할 게 아니라 기업인들이 원하면 무엇이든 규제를 완전히 풀어줘야 한다. 이렇게만 되면 민주노총도 변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변해야 한다.”
중앙일보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7일 서울 새문안로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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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민주노총은 마치 빚 독촉이라도 하듯 친노동 요구에 열을 올리더니 문재인 정부와도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에서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런데도 다음 달 1일 총파업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바뀔 수 있을까.

A : “변화의 조짐을 볼 필요가 있다. 조선 산업에서 STX·성동 조선이 구조조정 과정에 있었는데 극단적 무급 휴직을 받았다. STX조선은 고용은 유지한 채 6개월간 순환휴직을 한다. 성동조선은 2년 4개월 무급휴직을 한다. 모두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다. GM한국도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변하고 있는 것이다.”




Q : 투쟁의 근본 원인을 봐야 할 것 같다.

A : “격차 문제라고 봐야 한다. 경제가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100대 30이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다. 청년 10명 중 2명밖에 괜찮은 곳에 못 간다. 그러니까 안 가는 거다. 갈 데가 없는 거다. 청년들이 못 가는 이유는 격차 때문에 못 가는 거다. 기성세대 역시 나가도 갈 곳이 없다. 그러니 기득권을 지키려고 죽기 살기로 대립하고 있다. 유연성을 가지게 하려면 이 격차를 없애야 한다. 10년이든 20년이든 계획을 세워서 격차를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노조는 많이 올라간 임금 요구는 자제하고 또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걸 내놓기 시작해야 한다. 작년에 연대기금이라고 해서 금융 노사가 1000억원을 만들었다.”




Q :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없나.

A : “격차의 밑바닥이 최저임금인데 왜 이렇게 혼란스러워졌나. 최저임금은 만원을 주라는 게 아니라 만원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문제는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의 회사는 만원을 주기가 어려운 회사다. 왜 저렇게 어려운가, 임대료가 있다든가 카드 수수료 문제가 있다든가 프랜차이즈 수수료 있든지, 이 구조에서 대부분 상위 클래스에서 가져가니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정부나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만원을 줄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풀려야 격차 해소가 가능하다.”




Q : 민주노총을 설득해낼 수 있을까.

A : “여지가 있다. 독일·네덜란드도 노조가 다 반대했다. 그런데 일본·한국이 따라오니까 싼 차를 못 만드는 거다. 이때 슈뢰더 총리가 ‘청년들이 놀고 있는데 체코 가서 공장 지으라는 거냐’고 호소해 노조들의 묵인 속에서 한 게 '하르츠 개혁'이다. 그래서 한 것이지 처음부터 노조가 순수하게 한 건 아니다. 노조가 속성상 변화에 반대하지 않더라도 찬성하기는 어렵다. 우리도 '광주형 일자리'가 왜 나오고 있나. 중국이 차를 만들면서 현대기아차는 가성비를 못 내세우게 됐다. 살기 위해선 바뀌어야 한다.”




Q : 소득주도성장은 어떻게 보나.

A : “소득주도, 포용국가 다 좋은데 이건 슬로건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상반기에 경제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낙관했다고 본다. 최저임금 올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가 어려우니 속도 조절하자고 해야 한다. 공기업의 정규직화도 부분적 단계화가 필요하다. 위기의 산업부터 살려 놓아야 한다.” 논설위원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운동 1세대 출신으로 1985년 통일중공업 노조위원장을 하다가 해고됐다. 당시 별명이 ‘문전투’였다. 파업에 나가라고 후배 조합원들을 거칠게 몰아세우는 강경 노동운동을 하면서 6번이나 구속됐다. 그는 노동운동 30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순간부터 투쟁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만 하다가 대화하자 하니까 ‘문전투 맛이 갔다’면서 노동운동에서도 중앙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금속노조위원장 하다가 민주노총 위원장 해야 하는데 못했다는 게 변방에 간 거 아니겠나. 이제는 노조도 변해야 한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의 주도적 대화”라고 강조했다.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 취재에는 변은샘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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