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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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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6일 한국경제 오형규 논설위원은 ‘청년의 삶을 저당 잡은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내용은 귀족노조, 직능단체, 시민단체 등이 신규고용창출을 할 수 있는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을 막고 있는지라, 청년들의 취업과 삶이 어려워졌다는 그야말로 흔한 사랑노래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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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들이 엄청난 비리가 있는 것처럼 연일 맹공을 퍼부었지만 대다수가 과장이었던 고용세습 문제를 시작으로, 승차공유 서비스에 반대하는 택시기사들과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의료계와 ‘좌파 시민단체’ 등이 취업준비생들의 헬조선을 만들어낸 주범들로 지목되었다.

여기까지도 익숙한 논리다. 하지만 이 칼럼의 마지막 문단에서 나는 아연실색했다. “문화연구가 최태섭이 언급했듯 ‘우리편이라는 괴물’에 끌려가선 답이 없다. ‘우리편’도 개혁할 수 있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라니? 여기서, 갑자기, 내가, 왜?

내가 ‘우리편이라는 괴물’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쓴 것은 2011년의 일이다. 그리고 내가 괴물이라 지칭한 것은 오 논설위원의 이야기에 오히려 반대되는 이야기다. 반MB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며 진보진영 내의 다른 목소리들을 억압하던 이들, 나꼼수에 대한 비판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던 지지자들, 민주노총을 비롯한 ‘구’진보에게 ‘노동’ 같은 낡은 개념으로 재를 뿌리지 말라고 윽박지르던 ‘깨어 있는 시민’과 그들의 ‘단결된 힘’에 대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편이라는 괴물은 그 ‘구’진보가 자신의 가치로 삼았던 ‘사소한 것’들은 무시하는 한편, 그들이 가진 얼마 안되는 자원과 도덕성은 재물로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지금도 트위터의 민주노총 계정으로 가면 비슷한 결의 무례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심지어는 며칠 전 민주노총 계정에 올라온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소속인 21년차 식당조리원의 기고문을 공유했더니, 대뜸 “민주노총 너네들 하는 짓을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고 싶지 않다”라는 메시지가 나에게까지 배달되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조합원도 아닌 저에게 그런 말씀 하셔도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이렇게 답변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한편, 오 논설위원은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청년을 주워섬기지만, 선거 때뿐이다. 청년수당으로 입막음할 뿐, 청년 일자리를 위한 구조조정, 노동개혁 등 난제들은 죄다 외면한다”라고 썼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전 정부가 청년을 팔아서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했던 대표적인 사례들이 바로 저것이었다. ‘장그래를 위해 노동개혁을 해서 2년 만에 잘리던 비정규직을 4년 만에 잘리게 바꾸겠습니다’ 같은 말장난을 기억한다면 할 수 없을 이야기다.

청년이 빈곤해지는 것이 걱정이면 청년임대주택과 대학생기숙사를 반대하는 건물주들에게 따져볼 일이다. 청년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진 것이 안타깝다면 청년의 정치진입을 막고 있는 기성정치제도에 날을 세워야 한다. 저런 것들이 10% 남짓의 조직률을 가진 노조보다 몇 배는 더 청년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노조는 무조건 선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심지어 민주노조 내부에도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성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소수자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이것들에 맞서서 더 정의롭고, 더 포용적이고, 더 서로 돕는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외부의 요구들이 왜 없겠는가?

애초에 세상에 절대적으로 선하고 악한 것이 있지 않다. 자신을 돌아보길 거부하고, 약하고 작은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우리편’의 부정의에 눈감으면서, 남의 허물에는 민감한 그 모든 곳에 괴물이 있다.

하지만 그 괴물과 맞서려면 일없이 청년들을 불러다가 노조와 싸움이나 붙이려고 하는 것보다는 더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 그게 우리편이라는 괴물에 대한 원작자의 생각이다.

부디 착오 없으시길 바란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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