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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文 "저성장 고착화 가능성"…소득주도성장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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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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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포용'이라는 키워드를 18번이나 언급했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당시 키워드였던 '사람 중심 경제'를 8번밖에 언급하지 않았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기본 철학으로 내세웠던 사람 중심 경제를 조금 더 발전시키고 개념을 확장해 '포용국가'라는 개념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포용이라는 철학이 단순히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기본 철학이 돼야 함을 강조했다. 포용적 사회, 포용적 성장, 포용적 번영, 포용적 민주주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역대 정부도 복지를 늘리는 등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지만 커져 가는 양극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기존의 성장 방식을 답습한 경제 기조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장 본위의 기존 경제 성장 방식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상황 인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은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도 않다. 불평등이 그대로 불공정으로 이어졌다"며 "불평등·불공정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해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근 성장률이 하락하고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이 침체에 빠져 있지만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 스스로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것에 비춰 아쉬운 대목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기존 전략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 재천명된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저성장과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저출산·고령화, 산업 구조의 변화 같은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우리 경제 체질과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경제 정책 3대 키워드에는 변동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며 "물은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바다로 흘러가는 법"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세계은행·IMF(국제통화기금)·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많은 국제기구와 나라가 포용을 말한다"며 "성장 열매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포용적 성장'과 중·하위 소득자의 소득 증가·복지·공정경제를 주장한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빈곤 문제 해소와 소득 재분배 문제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며 "성장이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을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확장 재정에 나서는 것도 포용국가를 만들기 위한 한 방법론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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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재정 여력이 있다면 적극 재정 운용을 통해 경기 둔화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일자리·양극화·저출산·고령화 같은 구조적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는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예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통령 연설 중 포용 발언은 경제(27회)와 성장(26회) 등 다음으로 많이 언급됐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주로 '소득주도성장' '지속가능성장' 등의 표현에 담겼다. 이 밖에 '함께'(25번) '혁신'(12번) '평화'(8번) 등이 키워드로 많이 언급됐다. 이어 문 대통령은 최근 진행 중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해 "기적 같은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증폭될 수 있다"며 절박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라며 "대통령이 규제 완화 등 정책 지원으로 신산업을 일으키겠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시장에 줘야 기업들도 고용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포용국가를 강조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산업 활성화 방안을 그 방법론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며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면 포용적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회 시정연설 이모저모

1일 문재인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 여야 반응이 판이하게 갈렸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박수갈채로 환대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등을 먼저 만나 환담을 나눈 뒤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짙은 감색 양복에 파란색과 회색이 사선으로 교차된 넥타이를 맨 문 대통령의 입장에 여야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했지만, 호응은 달랐다. 문 대통령이 본회의장 중앙 통로를 지나 연단에 오르기까지 민주당 의원들은 양옆으로 도열해 쉼 없이 박수를 보냈고, 문 대통령은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들에게 반갑게 악수를 건넸다.

연설은 35분간 이어졌다. 연설 도중에만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21차례, 본회의장 입장과 퇴장 때까지를 합하면 23차례 박수가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문 대통령의 연설 모습을 촬영하는 민주당 의원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에 반해 한국당 의원들은 연설 중간에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연설 말미에 "우리는 함께 잘살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잘살 수 있다"고 힘주어 협치를 제안하며 한국당 의원들 쪽을 바라봤다.

문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와 입장 때 이용한 민주당 의석 쪽 중앙 통로 대신 한국당 의석이 주로 배치된 통로로 성큼 직행하자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박용범 기자 / 오수현 기자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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