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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같은 일 하면서도 470만원 차이"…지역별 차등임금제에 도시쏠림 심화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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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로 다른 임금을 줄 수 있는 ‘지역별 차등 임금제’(이하 차등 임금제)’를 두고 일본 전국에서 크고 작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NHK에 따르면 일본 근로자들은 “도쿄 등 대도시와 비교하면 1년에 약 40만엔 이상(약 422만원) 급여 차이가 발생한다”며 ‘제도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이어 같은 일을 하면서 급여가 다른 현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대도시를 선호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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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500엔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 NHK 캡처


◆최저임금과 지역별 차등임금

일본은 이달초 전국 47개 ‘도도부현(시군도에 해당)’의 최저임금을 일제히 인상했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전국 평균 26엔 오른 874엔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역별 차등 임금 적용으로 각 지자체에서는 각기 다른 기준에 맞춰 내년도 최저임금을 개정·발표했다.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도시는 도쿄도로 시간당 985엔(약 9910원)이며, 최저 임금이 가장 낮은 가고시마현은 761엔(약 7656원)에 그쳐 도쿄도와 200엔 이상 차이를 냈다.

이러한 차이는 매년 최저임금인상과 함께 그 차이도 늘어나면서 근로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에 지방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여 차이를 이유로 고교 또는 대학 졸업 후 도시로 상경하는 ‘지방 엑소더스(탈출)‘이 심화해 지방 도시 소별과 인재유출에 대한 위기감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일본의 전체 상용근로자 중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40%에 달한다. 최저임금은 지역별 급여와 정규직 임금책정과 인상에 사용된다. 또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 상용근로자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지역별 최저임금 차이가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연간수입에 차이를 내고, 이에 따른 차이가 지역별 격차를 심화해 불만이 전국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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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역별 임금(표) NHK 캡처


◆“얼마 차이 안 난다고?...연간 470만원 이상 차이 나기도”

단순 최저임금을 놓고 보면 당장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각 지자체와 사업주들이 주장하는 바도 ‘단돈 몇십엔 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 임금이 가장 높은 도쿄도 985엔과 가장 낮은 가고시마현의 761엔을 각각 적용하여 동일 조건 1일 8시간, 주 5일 근무하게 되면 1개월에 3만 9000엔 차이가 난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가고시마현 근로자들은 무려 47만엔의 임금을 덜 받는 셈이 된다.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하는 수준과 사용자의 지불 능력 등을 바탕으로 결정’된다. 지역별 최저임금 격차는 2006년 109엔으로 나타났지만 10년여 만에 2배 이상 벌어졌다.

인터넷상에는 이러한 지역차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의견을 요약해보면 ‘물가는 전국이 동일하게 오르지만 최저임금의 차이는 날로 벌어져 대도시와 지방 도시간 생활 수준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지적이다.

◆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 “인프라 적고 임금까지 낮아”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창 일할 젊은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대도시로 향하던가 최저임금이 높은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이어오고 있다.

탈지방은 주로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 이들은 임금차가 아니더라도 갑갑한 시골을 떠나 즐길 거리가 많은 대도시를 선호하는 반면,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 1인 생활하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한 예로 가나가와현은 도로를 경계로 시즈오카현과 시간당 최저임금이 100엔 이상 차이를 보인다. 오사카시와 와카야마현의 경우 강을 사이에 두고 급여와 도시 규모에서 큰 차이를 나타내 시즈오카현과 와카야마현 젊은이들은 강과 길을 건너 가나가와현과 오사카시를 활동무대로 삼고 있다.

고령화·저출산으로 인한 일손 부족에 이어 임금 불평등으로 지방 도시에 10대~20대가 사라지자 일부 지역은 이들을 유치하고자 대도시에 준하는 높은 시간당 임금을 제시하는 곳도 생겨났다.

아타미시 ‘헬로 워크’(일자리 소개 등을 하는 곳)에 따르면 시의 유효구인배율은 버블경제기 보다 높은 2.66배를 나타내며 일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헬로 워크 관계자는 “근로자를 불러 모으기 위해 가나가와현 임금수준에 맞추고 있지만, 영세사업자 중에는 임금을 올리기 어려운 곳도 많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근 가나가와현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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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임금차는 최저임금인상과 함께 증가해 근로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NHK 캡처


◆싼 임금 지역들, 이제 와서 “차등임금 불공평, 없애자” 주장

일손 부족과 고령화에 이은 탈지방 행렬 심화로 일손을 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최저임금 차이가 지역 인구 유출을 가속화 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에 일손 부족을 겪는 지자체에서는 차등 임금 철폐를 요구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조하고 나섰다.

일본 전국 노동조합 총연합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전국 지자체 중 10% 이상에 해당하는 254개 시정촌과 도도부현 의회에 ‘동일임금 실현과 차등 임금으로 인한 급여 차이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서가 잇따라 의결됐다.

올 6월 시즈오카현은 “최저임금이 전국 평균을 밑도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격차가 젊은 노동자의 현 외 유출을 가속하는 요인이 된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 국가 차원에서 최저 임금 인상에 따른 지역 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사용자인 기업도 고민하긴 마찬가지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시간당 983엔을 지급하는 가나가와현의 한 공장은 30여 명의 직원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기업의 지난 5년간 임금 부담은 10% 이상 증가하여 최근 인건비를 줄일 목적으로 공장과 매장 휴일을 늘렸다.

공장 사장은 “인건비를 인상할 필요성도 이해하지만 지금도 사정이 빠듯한 지방 도시에서는 앞으로도 매출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인건비가 더 오른다면 사업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NHK는 전문가 말을 인용해 전 세계에서 지역별 차등 임금을 시행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라며 미국과 캐나다는 연방제를 시행하고 그마저도 차이가 적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최저 임금은 유럽 각국에 비해 낮고 이웃 나라인 한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라며 여기에 더해 지역별 차등 임금 적용으로 그 격차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저임금을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혀 논란을 불렀다.

앞서 일본의 사례와 근로자들의 원성, 여러 부작용 등을 종합해보면 차등 임금도입이 과연 적절한 아이디어일지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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