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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세명의 아름다운 여신에 취한 2차 파리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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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파리의 심판 레드 1위 끌로 뒤 발 Clos Du Val

레이블에 광채미모, 환희, 축제 상징 삼미신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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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 Graces by Antonio Ca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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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삼미신 1500년경, 콘데 미술관 출처: 미술대사전(인명편)


15세기 로마에서 세명의 나체 여인 조각상이 발견됩니다. 이들은 그리스 신화와 미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삼미신(三美神)으로 신과 인간을 기쁘게 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그라케스(Graces), 카리테스(Charites), 카리스(Charis), 그라티아이(Gratiae)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죠.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는 신들의 탄생과 계보 등을 정리한 서사시 신통기(神統記·Theogony)에서 이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는데 아글라이아(Aglaia)는 빛나는 아름다움을, 에우프로쉬네(Euphrosyne)는 기쁨의 여신으로 쾌할과 환희를, 탈리아(Thalia)는 축제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예술의 신 아폴로를 수행하며 예술을 전파한 여신들로도 알려져 있답니다. 젊고 발랄하며 아름다운 세명의 처녀들은 라파엘, 루벤스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이들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 정도로 미술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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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여신을 레이블에 담은 끌로 뒤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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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도 와인은 즐거움과 활력을 주니 삼미신과 많이 닮았습니다. 실제 이를 모티브로한 와인이 있습니다. 미국 나파밸리에서 최고의 포도밭이 몰려있는 곳으로 손꼽히는 스택스립 디스트릭트(Stags Leap District)를 대표하는 생산자중 하나인 끌로 뒤 발(Clos Du Val)입니다. 와인병 레이블에는 기쁘게 춤을 추고 노래하는 세여인의 나체상이 그려져 있는데 삶의 활력소가 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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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파리의 심판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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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파리의 심판 현장


사실 끌로 뒤 발의 유명해진 것은 이들 여신 그림때문은 아닙니다. 바로 유명한 ‘파리의 심판’입니다. 1976년 5월 24일 파리에 도멘 드 라 로멘네꽁띠 공동 오너 오베르 드 릴렌(Aubert de Villaine), 교수, 와인전문지 편집장, 미슐랭 3스타 오너, 셰프, 소믈리에 등 프랑스 유명 와인 전문가 9명이 모입니다. 이들은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5대 샤토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급 와인과 당시만해도 와인의 변방이던 미국 와인들을 블라인드로 심사하는 대결을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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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이 1973


하지만 뜻밖에도 화이트와 레드 모두 미국 와인이 1위를 휩쓰는 기염을 토합니다. 화이트 1위는 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이(Chateau Montelena Chardonay) 1973이 올랐고 3, 4위도 미국와인 샬론 빈야드(Chalone Vineyard) 1973, 스프링 마운틴 빈야드(Spring Mountain Vineyard) 1974가 차지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프랑스 와인은 뫼르소 샤름 프리미에 크뤼 루로(Meursault Charmes 1er Cru Roulot)가 2위를 차지했고 나머지도 5, 7, 8위에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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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택스립 SLV 카베르네 소비뇽


오후에 열린 레드 와인 심사에서는 1위에 오른 와인은 미국 스택스립 SLV 카베르네 소비뇽(Stag's Leap SLV Cabernet Sauvignon) 1973입니다. 특히 2∼4위 샤토 무통 로칠드 1970,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1970, 샤토 몽로즈(Chateau Montrose) 1970 등 유명한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들을 모두 물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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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 뒤 발 스텍스립 카베르네 소비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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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 뒤 발 스텍스립 카베르네 소비뇽


이어 1986년 파리의 심판 10주년을 맞아 레드와인만 10년전과 같은 빈티지로 재대결을 합니다. 미국 와인은 빈티지에 상관없이 바로 마실 수 있지만 보르도 와인은 세월이 흘러야 최고의 맛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만큼 생산된지 6년 정도된 어린 빈티지로 심사한 첫 대결은 불공평했다는 이유입니다. 1차 파리의 심판을 주도한 스티븐 스퍼리어가(Steven Spurrier) 기획에 참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French Culinary Institute) 주최로 열린 9종의 재대결에서 1위에 오른 와인인 끌로 뒤 발 1972로 3∼5위에 오른 샤토 몽로즈 1970, 샤토 레오빌 라스카스(Chateau Leoville Las Cases) 1971, 샤통 무통 로칠드 1970과 9위 샤토 오브리옹 1970을 제칩니다. 같은 시기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주최로도 재대결이 열렸는데 하이츠 와인 셀라 마르타스 빈야드(Heitz Wine Cellars Martha's Vineyard)가 1위에 오르는 등 5위까지 미국 와인이 휩쓸고 끌로 뒤 발이 5위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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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 뒤 발 스텍스 립 빈야드


나파밸리의 대표 생산지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크 놀 디스트릭트(Oak knoll District), 욘트빌(Yountville), 오크빌(Oakville), 러더포드(Rutherford), 세인트 헬레나(St.Helena), 스프링 마운틴(Spring Mountain), 칼리스토가(Calistoga)가 늘어서 있고 동쪽에 있는 생산지가 스택스 립입니다.

스택스 립은 최상급 카베르네 소비뇽이 자라기 아주 좋은 환경을 지녔습니다. 수백만년 화산 폭발과 오랫동안 쌓인 충적토로 이뤄진 토양은 포도가 미네랄을 잘 머금게 합니다. 낮에는 따뜻하고 저녁에는 바닷바람이 열기를 식혀주면서 뛰어난 산도와 응집력을 지니 뛰어난 포도가 생산되죠. 이때문에 이곳에는 1차 파리의 심판 레드 1위 스택스 립 와이너리를 비롯해 파인 리지(Pine Ridge), 셰이퍼(Shafer) 등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몰려있습니다.

끌로 뒤 발 스택스립은 카베르네 소비뇽 78%에 메를로 16%, 카베르네 프랑 4%, 쁘디 베르도 2%를 섞은 전형적인 보르도 블렌딩 와인으로 보통의 나파밸리 와인처럼 너무 진하거나 잼같은 풍미는 매우 적습니다. 대신 미네랄와 신선한 산도, 부드러운 탄닌이 돋보이고 블랙 베리 등의 과일향과 모카, 스파이시한 허브 향이 어우러집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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