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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김지석의 화·들·짝] ‘일대일로’라는 멀고 험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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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대일로는 중국 경제의 발전 전망이자 중장기적 탈출구이기도 하다. 그 핵심에는 안정적 에너지 확보, 시장 확대, 인프라 건설을 통한 과잉자본 수출이 있다. 중국 경제는 이미 고속성장 시기를 지나 급격한 감속 단계로 접어들었다. 발전 모델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최대 변수는 앞으로 더 심해질 미-중 패권싸움의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해 부과하는 무차별 보복관세에 대해서는 지구촌의 비판 여론이 높다. 이렇게 가다간 앞으로 미-중 사이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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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많이 주고 적게 취하고, 먼저 주고 나중에 가져가며, 오직 주기만 하고 이익을 취하지 않고, 아프리카가 중국의 발전 급행열차에 타는 것을 환영한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이른바 ‘부채 외교’를 활용한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심지어 남미의 정부에도 수천억달러의 인프라 차관을 제공한다. 그러나 차관 조건은 아무리 봐도 불투명하며, 이익은 항상 압도적으로 중국에 돌아간다.”(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시진핑 주석은 집권 첫해인 2013년 9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대 연설에서 일대일로라는 ‘세기의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일대(一帶)는 ‘실크로드 경제벨트’, 일로(一路)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줄인 말이다. 고대 실크로드처럼 내륙과 해양에 다양한 길을 만들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이 구상의 본질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까.

■ 일대일로는 중국 방식의 세계화 모델이자 지구촌 공간재편 시도다.

시진핑은 일대일로의 5대 이념으로 정책 소통, 인프라 연결, 무역 확대, 자금 융통, 민심 상통(민간 교류)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구상으로 연결하려는 지구촌의 공간은 동남아, 중앙아, 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동북아, 유럽 등으로 나뉜다. 미주 대륙은 일단 빠져 있다. 5대 이념 가운데 인프라 연결, 무역 확대, 민심 상통은 중국과 각 공간의 연계를 크게 강화하는 수단이자 목표다. 중국이 큰손이 돼 2016년 설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이를 뒷받침하는 자금 융통 기구다. 정책 소통에서는 새로운 거버넌스(통치·관리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이런 방식은 지난 수십년 동안 서구가 주도해온 금융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차이가 있다. 무역과 투자를 늘리자는 점은 비슷하지만, 인프라를 연결해 관계의 기초를 새로 만들고 민간 교류 확대와 새 소통 틀을 통해 통합성을 키우는 것은 그 이상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내정불간섭 원칙도 일대일로 구상과 조응한다. 중국은 서구 나라들처럼 개발도상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등을 외교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협력이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일대일로는 중국 경제의 발전 전망이자 중장기적 탈출구이기도 하다. 그 핵심에는 안정적 에너지 확보, 시장 확대, 인프라 건설을 통한 과잉자본 수출이 있다. 중국 경제는 이미 고속성장 시기를 지나 급격한 감속 단계로 접어들었다. 발전 모델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중국은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장악한 에너지공급망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한다.

■ 지금의 지구촌 공간은 근대 이후 서구가 짜놓았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오랫동안 패권을 유지해온 미국의 의지가 크게 반영돼 있다. 일대일로 구상은 이에 대한 도전이다.

마르쿠스 브루너마이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의 중국을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독일과 비교한다. 그는 지금의 미국과 당시 패권국인 영국이 자유시장 경제를 내세운 데 비해 중국과 독일이 국가 주도 발전을 통해 패권에 도전한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런 경쟁에서는 경제의 네가지 전선에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산업)표준을 둘러싼 경쟁, 기술 획득, 금융 전쟁, 인프라를 통한 경제력 투사가 그것이다. 일대일로는 이 가운데 기술 획득을 제외한 모두와 관련된다. 기술 획득에서는 ‘중국 제조 2025’ 구상을 두고 미-중 갈등이 커지는 중이다.

중국이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을 중심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것은 이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새 국제 표준과 규범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 구상에 필요한 금융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각함으로써 기존 국제 금융 체제를 일정 부분 대체하려 한다. 구상의 핵심 부분인 인프라 투자는 미국이 장악한 서태평양·인도양 해상통로를 우회하거나 돌파해 대안 통로를 마련하려는 안보 목표와 결합한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70여개 나라가 중국과 철도·항구·고속도로·파이프라인 등으로 연결되면 중국 중심의 새 세계체제가 만들어지는 효과가 생긴다. 이는 과거 독일이 영국의 3C(인도 콜카타~이집트 카이로~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체제에 맞서 베를린(독일)~비잔티움(터키)~바그다드(이라크)를 잇는 철도를 만들어 3B 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을 연상시킨다. 독일은 이 체제를 완성하지 못한 채 1차대전에 돌입했다.

■ 일대일로 구상은 이제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지구촌 나라의 3분의 2에 가까운 130여 나라에서 관련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사업 참여국 사이 화물 무역 규모가 6050억달러에 이르고, 80여곳에 경제무역협력구를 만들어 24만개의 현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중국은 말한다. 아프리카가 특히 눈에 띈다. 2009년 900억달러 남짓하던 중국-아프리카 무역액은 이제 해마다 1700억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중국의 대아프리카 누적 투자액은 지난해까지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에는 무려 41명의 아프리카 나라 대통령이 참석했다.

하지만 중국이 밀어붙이는 인프라 투자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에서 관련 사업이 축소 또는 취소되고 있으며, 중국이 무리하게 떠안기는 차관으로 여러 나라가 부채에 시달린다. ‘부채 외교’라는 미국의 비난에는 일정한 진실이 있다. 중국의 경쟁국인 인도 역시 일대일로가 자신의 국가이익을 침해한다고 본다.

초반에 방관하던 미국은 이제 자신의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가장 구체적인 대응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서명한 빌드법(BUILD, 개발 촉진을 위한 투자활용 향상법)이다. 기존 해외 투자기관인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와 국제개발처(USAID) 등을 통합해 미국국제개발금융공사(USIDFC)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기관의 투자 한도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자본금(500억달러)보다 많은 600억달러로, 이전과는 달리 인프라 사업에 대한 차관 제공뿐만 아니라 지분 투자도 할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는 이제 ‘눈에는 눈’ 식으로 중국과 싸우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개도국들이 볼 때 미국의 이런 시도는 중국과는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금융 중심 신자유주의 방식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 일대일로 구상이 조정기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프로젝트 시행국은 물론이고 중국의 경제 사정도 생각만큼 좋지 않은데다 사업 추진 방식에서 논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나라가 침몰하지 않는 한 구상 자체가 중단되거나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이 밝힌 기간은 2014년에서 2049년까지 35년으로, 이제 겨우 5년이 지났다. 중국의 국가목표는 건국 100돌이 되는 2049년에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최대 변수는 앞으로 더 심해질 미-중 패권싸움의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해 부과하는 무차별 보복관세에 대해서는 지구촌의 비판 여론이 높다. 그만큼 관세전쟁은 세계 경제 전체에 부정적 효과를 주기 쉽다. 과거 영국도 독일에 대해 관세전쟁을 벌이기를 주저했으며, 대공황 이후 각국 사이 관세전쟁이 본격화한 1930년대에 세계 경제는 심한 몸살을 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 발표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기 방침도 조약 체결국인 러시아보다 중국을 더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렇게 가다간 앞으로 미-중 사이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일대일로를 경원할 이유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제안한 동북아 철도공동체는 일대일로 구상과 맥락이 닿는다. 물론 일대일로의 동북아판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제대로 추진될 수 있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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