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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진보·보수 정권 오간 20년, 고용세습 금지법 못 만든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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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버티기에 정부·국회 팔짱

노조, 고용세습 담긴 단협 유지

교통공사 정규직 문제 불거지자

야 3당 국조 합의, 국회 과반 확보

중앙일보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 등 당직자와 당원들이 21일 국회에서 ‘국가기만 문재인 정권의 가짜 일자리·고용세습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중앙정부·지방정부·특권노조가 3각 층을 형성해 자기들 마음대로 일자리를 약탈하고, 젊은이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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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진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파문을 계기로 고용세습에 대한 비난 여론이 다시 한번 쏟아지고 있지만, 이를 근절하는 제도적 장치는 20년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노사의 부당한 야합을 정부와 국회가 방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는 왜 고용세습을 못 막을까. 이는 국회 속기록에 잘 나와 있다. 19대 국회인 2015년 6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민현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근로자의 가족을 우선·특별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처음 제출된 법안이었다. 당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런 문답이 오갔다.

▶민 의원=“고용노동부가 이 법안에 부정적인 견해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장관=“현행법으로도 세습 조항은 충분히 방지가 가능합니다.”

▶민 의원=“그럼에도 고용세습이 199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잖아요.”

▶이 장관=“앞으로 더 철저히 단속하겠습니다.”

고용정책기본법 7조에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조항을 적용해 고용세습 관행을 바로잡는 조치엔 소극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1996년 국내 기업 849곳의 단체협약서를 분석해 32.9%가 고용세습 조항이 있다고 발표했다. 민 의원은 이 조사를 지적한 것이다. 이에 이 장관은 “지적이 충분히 맞다”면서도 ‘고용세습 금지 법안’의 입법은 끝까지 반대했다. 결국 법안은 환노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22일 환노위 노동관계법 공청회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비정규직을 대변한다면 민주노총 사업장의 고용세습 조항부터 폐지하라. 왜 정규직 노동자들의 아들만 또 정규직으로 채용돼야 하느냐”고 따졌다. 이에 이승철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은 “고용세습은 이미 노동부가 해명했고, 오히려 문제 되는 것은 재벌의 경영세습”이라고 반박했다.

올해 들어 노동위원회가 고용세습 단협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사업장은 단 1곳에 불과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 간 자치에 단협을 맡겨 놓아야 하는데 왜 정부가 관여하냐고 양대 노총이 반발한다”고 전했다. 결국 민주노총·한노총의 반발을 의식해 정부가 고용세습 관행을 눈감아주고 있는 셈이다. 현행법상 정부가 노사에 시정명령을 내려도 고작 500만원의 벌금만 내면 된다. 사업주도 강성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의 채용 방식도 법률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노조나 친인척을 우대하는 단체협약을 무효화하는 방식으로 특혜 채용을 막고, 채용 절차를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고용세습을 원천적으로 막는 법안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고용세습에 가담한 이들을 강력하게 형사처벌하는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때 당론으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노조가 전통적 우군인 더불어민주당은 입법에는 아직 소극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등 야 3당은 22일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의 고용세습 논란에 대한 국정조사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동안 국조 문제에 대해 유보적 입장이던 평화당이 국조 실시로 결론을 내면서 야 3당의 ‘국조연대’(156석)는 국회 과반을 확보하게 됐다.

현일훈·윤성민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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