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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또 심신미약이냐” 80만명 넘게 답 요구한 ‘강서 PC방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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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우울증 진단서 제출…청와대 게시판 ‘최다 참여’ 예상

조두순 사건 등 양형 불신 때문인 듯…법원, 최근 엄격히 판단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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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한 피의자를 엄벌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참여자가 21일 81만명을 넘어섰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해당 청원은 “언제까지 우울증과 심신미약과 같은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냐”며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원 마감일이 아직 19일가량 남아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역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국민청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진 배경에는 살인 피의자가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과거 ‘심신미약’을 인정한 살인사건들 중 국민의 일반적인 법감정과 맞지 않아 사회적 논란이 된 경우가 있다보니, 심신미약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두순 사건이 꼽힌다. 검찰은 2008년 당시 8세 아동을 잔혹하게 성폭행한 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피고인은 조현병 등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 받았다. 두 사건 모두 1심의 형량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법원 양형기준상 살인범죄에서 심신미약 상태는 형을 줄일 수 있는 요인으로 분류된다. 범행 당시 정상적인 판단력이 결여된 상태에 놓여 있는 피의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무겁게 물을 수 없다는 것이 형법상 심신미약 사유를 도입한 취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심신미약 감경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신미약 감경제도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울증 약을 누구나 쉽게 처방받을 수 있어 범죄자가 악용할 우려도 있다”면서 “환자의 개인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사건은 재판부가 심신미약을 인정해줄 경우 그렇게 진단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투명하게 알려줘 불신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심신미약 감경제도 자체에 대한 무용론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국민의 법감정도 이해하지만 이 제도는 오랫동안 형법을 연구하고 논의한 끝에 만들어진 책임주의 원칙”이라며 “형벌이 책임의 정도에 따라 정당하게 부과돼야 한다는 원칙은 허물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심리검사는 전문가들이 관여해 매우 철저하게 판단한다.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치료감호처분을 받으면 교도소 내 치료감호소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사실 수형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사건처럼 평소 우울증 약을 복용해왔다는 주장이나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것만으로는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법원은 피고인의 정신감정 상태 등을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심신미약 여부를 판단한다.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정신질환이 범행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돼야 한다”면서 “치료감호소에서 피고인을 정신감정한 의사가 심신미약 상태임을 검토한 자료가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를 22일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보내 길게는 1개월 동안 정신감정을 실시한다.

최근에는 법원이 심신미약 상태인지를 엄격히 판단하는 추세다. 지난해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주범 김모양이나 딸의 친구를 유인해서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의 경우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았다.

박광연·허진무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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