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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여자답게 남자답게 아니라 너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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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젠더 수업 이야기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한겨레21

학교 징병제로 통하는 ‘녹색어머니회’는 왜 ‘녹색학부모회’가 되지 못하는 걸까. 아빠를 비롯한 다른 가족이 참여하거나 이름을 녹색학부모회로 바꾼 학교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학교 젠더 시계는 여전히 10여 년 전에 머문 곳이 많다. 남자는 분홍색 가방을 가져오면 놀림감이 되고, 여자는 출석번호가 남자보다 뒤에서 시작된다. 여교사는 전입·전출 환영식에, 남교사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데 동원된다. 녹색어머니회, 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마미캅(어머니경찰) 등은 육아를 엄마가 전담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멈춘 학교 젠더 시계를 누군가 시대에 맞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가벼운 독서모임에서 시작해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를 결성한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성별 고정관념이 성역할을 만들고 그것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성차별로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우리가 무의식중에 익히는 젠더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성 불평등 문제를 교육으로 풀어보자”는 공감대가 생겼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사회에서 ‘예민함’을 가르치기로 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예민함을 가르칩니다>(서해문집 펴냄)는 교실을 바꾼 열두 가지 젠더 수업 이야기다.

눈높이에 맞춰 이해를 도우면 빨리 반응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김수진 교사는 아이들에게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떠나 ‘나다움’을 찾는 수업을 했다. 남자아이들에게 남자답게 행동해보라고 하니, 아이들은 자신의 평소 행동보다 과장되게 웃고 움직임이 커졌다. 여자답게 행동해보라는 주문엔 입을 가리며 웃고 팔을 옆으로 흔들며 사뿐사뿐 뛰었다. 이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다운, 여자다운 행동을 주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 고정관념이 이미 내면화돼 있었다. 하지만 ‘너답게’를 주문했을 때 아이들은 금방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했다. 남자임에도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주문에 자신과 다른 행동을 했다며 깨우쳤다. 1년쯤 지나자 아이들은 한층 자유로워졌다. 운동을 못하는 남자아이도 움츠러들지 않고, 글씨가 예쁘지 않은 여자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이예원 교사는 아이들이 가져온 장난감의 주인을 찾는 놀이를 했다. 인형을 꺼내면 ‘자연스럽게’ 여아들의 이름이, 자동차가 나오면 남아들의 이름이 호명됐다. 이 교사는 남녀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나누는 건 성 고정관념이라는 설명을 해주며 그로 인해 불편했던 경험을 끌어냈다. “분홍색 싫다는데도 할아버지가 여자아이라고 분홍색 물통을 사줬어요.” “마트에서 인형을 고르자 아빠가 미니카를 보라고 했어요.” 성 고정관념에 갇힌 어른들에게 존중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 취향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변화를 겪었다.

학부모 상담인데 엄마만 오는 상황도 변화를 꾀했다. 우려의 시선 속에 아빠들에게 상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5개 반 상담 신청 결과, 1학기에 0%였지만 2학기엔 82%로 늘어나 120여 명의 아빠가 상담을 받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빠들이 상대적으로 육아에 관심 없을 거란 생각은 교사의 고정관념이었다고 반성할 만큼, 아빠들도 자녀 교육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저자들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거대한 변화는 가장 작은 곳에서 온다”면서 “교실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끌어낸다면 불가능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미영 <한겨레> 문화부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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