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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20년 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범, 스리랑카 자국법 심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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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 공소시효 지나 처벌 못해

현지 시효 20년 나흘 앞두고 기소

초동수사 미흡 탓, 성추행 혐의만

경향신문

초동수사 부실과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하지 못했던 20년 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주범이 스리랑카 현지에서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스리랑카의 공소시효가 20년이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스리랑카 검찰이 국경 밖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국민을 수사·기소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증거 부족 탓에 강간 혐의는 인정되지 못하고 처벌 수위가 낮은 성추행 혐의만 적용됐다. 부실했던 초동수사가 끝까지 발목을 잡은 것이다.

16일 법무부에 따르면 스리랑카 검찰은 1998년 대학생 정모씨(당시 18세)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스리랑카인 ㄱ씨(51·사진)를 성추행 혐의로 지난 12일 기소했다. 현지법상 20년인 공소시효 만료를 나흘 앞둔 시점이다.

1998년 10월17일 새벽 대학축제를 마치고 술에 취해 귀가하던 정씨는 집에서 7㎞ 떨어진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대형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은 당시 정씨의 속옷이 벗겨져 있는 등 성폭행을 당한 정황이 있는데도 단순교통사고로 사건을 종결했다. 유족들이 사고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씨의 속옷을 찾아내며 수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끝에 5개월 후 뒤늦게 재조사가 시작됐다. 정씨 속옷에서 신원불상 남성의 정액이 검출됐으나 추가 단서가 없어 수사는 진척되지 못했다.

미제로 끝날 뻔했던 이 사건은 2011년 또 다른 성범죄 사건으로 붙잡힌 ㄱ씨의 DNA가 정씨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전기를 맞았다. 검찰은 정씨가 ㄱ씨를 포함한 스리랑카인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도망치다 트럭에 치인 것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 발생 15년 만인 2013년 9월 ㄱ씨를 구속 기소했다. 나머지 2명은 불법체류로 추방된 상태였다.

당시 공소시효는 강간죄가 5년, 2명 이상이 벌인 특수강간죄가 10년으로 이미 모두 끝난 상태였다. 고심하던 검찰은 유일하게 공소시효가 남아 있던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적용했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는 지난해 스리랑카로 강제추방됐다.

정부는 스리랑카 당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했다. 한국과 형사사법공조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던 스리랑카에 전담팀을 두 차례 보내 협의하고 1000쪽에 달하는 증거서류 번역본을 전달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스리랑카 당국도 한국을 찾아 유족, 당시 수사관, 부검의 등 33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와 현장검증을 했다.

스리랑카 검찰은 ㄱ씨의 DNA가 피해자 몸이 아닌 속옷에서 발견됐고, 부검 결과 등에서 강압적 성행위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며 성추행 혐의를 적용했다. 스리랑카에서 성추행죄는 법정형이 징역 5년 이하다. 나머지 공범 2명도 증거부족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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