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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대학-출연연 연구비 갈등...기초과학연구원, 1700억 삭감에 집단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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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율성은 독창적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연구자 중심 철학이 오롯이 구현되길 희망한다”


지난 12일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채택한 제2의 도약을 위한 선언문의 일부다. IBS는 이날 제2의 도약을 위한 미래토론회를 대전 본원 IBS 과학문화센터에서 개최하고 기초과학계에서의 IBS 역할과 책임ㆍ발전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비롯해 IBS 각 연구단장과 피터 풀데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 물리연구소 명예소장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만큼 무게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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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는 지난 12일 제2의 도약을 위한 IBS미래 토론회(IBS Forum for Another Leap Forward)를 개최하고 선언서를 채택했다. 이 배경에는 정부의 IBS 예산 삭감 논란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정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에서 요구안보다 1754억을 줄인 4868억원을 정부안으로 확정했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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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가 갑작스럽게 선언문을 내놓은 배경은 뭘까. 과학계에선 지난 8월 말 정부가 확정한 2019년도 예산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가 IBS를 포함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내년도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 1754억 감액...IBS본원 2차 건립은 설계비도 빠져


실제로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 관련 예산은 당초 IBS의 요구안이던 6622억원 4100만원에서 1754억원이 감액된 4868억원으로 확정됐다. 또 각 대학의 핵심 연구인력 중심으로 꾸려지는 'IBS 캠퍼스 연구단' 연구시설과 IBS 본원 2차 건립 예산은 설계비조차 빠져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IBS는 당초 2021년 완료 예정이었던 본원 2차 건립을 위해 790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내년도 예산으로 26억3700만원을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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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도약을 위한 IBS미래 토론회(IBS Forum for Another Leap Forward)가 지난 12일 대전 IBS 과학문화센터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기초과학계에서의 IBS 역할과 책임, 발전 방안 등을 논의하고 선언서를 채택했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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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과학진흥과장은 "IBS의 28개 연구단이 사용하는 연구비 역시 올해 약 2060억원에서 내년에는 1980억원으로 약 80억원 줄고 전체 운영비로는 200억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도적 연구자들의 인지도ㆍ꾸준한 연구지원이 노벨상 원동력...젊은 과학자들에게도 기회 필요


IBS는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IBS 한 연구단장은 10월 초 수상자가 결정된 노벨과학상의 사례를 들며 "노벨과학상 수상 등 기초과학 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표 연구자들의 '인지도'와 꾸준한 지원을 바탕으로 한 30년 이상의 장기 연구"라며 "IBS의 각 단장은 해당 분야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인 만큼, 이들의 연구성과가 글로벌 연구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 요소다"고 밝혔다. 그는 "박사후연구원 두 명에게 내년에는 연구단을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통보하고 오는 길"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연구실적으로 우수성을 검증받고 있고 국내 연구진들의 연구 터전이 된다는 점에서 IBS 연구비가 삭감될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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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의 캠퍼스 연구단은 각 대학에서 약 20명의 대학 연구원을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사후연구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원 등에 기회다. 또 노벨상 수상여부는 국제연구네트워크ㆍ선도적 연구자들의 인지도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 돼, 관계자들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ㆍ일본의 이화학연구소와 같은 선도적 연구기관의 역할이 강조하고 있다.[사진 nobelprize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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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유룡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연구단장과 이영희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ㆍ현택환 나노입자연구단장은 지난 9월 말 한국연구재단(NRF)이 선정한 노벨상에 근접한 국내 과학자로 선정된 바 있다.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장인 로드니 루오프 UNIST 교수는 클래리베이트 사가 선정한 논문 피인용지수 세계 상위 0.01%에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각 대학에 소속돼 있으면서 연구단장으로 역할을 해온 IBS 대표 연구자들이다.

희귀 원소 발견으로 노벨상 갈 수 있는 '라온입자가속기' 예산 축소


특히 정부가 대폭 삭감한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에는 IBS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라온중이온입자가속기' 구축 관련 예산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권영관 IBS 라온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장 직무대행은 “중이온가속기는 2021년 완성 목표로 1조 4523억원이 총 사업비로 책정돼 있다”며 “총 사업비가 고정 계약돼 있는 만큼, 여기에 차질이 생기면 연구단이 부도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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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가 있는 미국 시카고 근교의 바타비아. 국내에서도 2021년 완공을 목표로 라온중이온가속기가 건립중에 있다. 그러나 올해 관련 정부예산안은 당초 요구안보다 4200억원 줄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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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중이온입자가속기는 강력한 전기장이나 자기장 속에서 입자를 가속해 큰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로 이 과정에서 새로운 희귀 동위원소를 만들 수 있어 구축 완료시 기초과학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본에서는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박사가 초석을 닦은 일본이화학연구소의 '니시나센터' 입자가속기가 건립된 후, 그의 지도 아래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등 초창기 일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대거 나온 바 있다.

정부 "풀뿌리 연구문화 정착해야"....2022년까지 매년 2700억 대학에 지원


IBS 예산 삭감의 밑바닥에는 과학계 연구비 갈등이 깔려있다. 그간 IBS 등 거대 출연연들이 그간 연구비를 독식해왔다는 지적이 각 대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IBS를 비롯한 선도적 연구기관의 육성보다 '풀뿌리 연구문화 정착'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이주원 과장은 “대학에 지원되는 연구비는 향후 매년 2700억씩 늘려 현재 약 1조2600억원 수준에서 2022년 2조5000억원까지 늘려갈 계획”이라며 “대학 중심의 풀뿌리 연구·개발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현 정부의 기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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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28일 열린 국무회의서 2019년 정부 예산안을 확정했다. [사진제공=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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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사이에선 예산 지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선양국 한양대 정보통신소재연구센터장은 “선진국 기초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정부의 일관성 있는 연구지원인 것은 맞다”면서도 “출연연 역시 예산에 따른 성과관리를 철저히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반분과 자문위원을 맡은 조재필 울산과기원(UNIST) 교수는 “출연연 투입 예산이 줄어든다고 해서 대학의 연구비 지원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며 “IBS 연구단이 있는 대학의 경우 한 연구단에 약 20명의 대학 연구진이 고용되는 만큼 순기능이 크다”고 밝혔다. IBS 예산과 대학 연구비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IBS는 예산 독식 논란에 대해 “각 연구단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지난 11일 대전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IBS가 요구한 예산을 감액한 것은 사실이지만, 설계비와 운영비 등을 반영해 IBS 본원 2차 건립 공사 기간을 준수할 방침”이라고 밝힌 상태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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